웃음 혈 자리를 제대로 공략한 코미디 영화 ‘육사오’가 113만 관객을 돌파하며 추석 극장가 복병으로 떠올랐다. ‘공조2’의 원맨쇼가 예상됐지만 의외의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제작비와 출연진, 배급 인프라까지 모든 면에서 체급이 맞지 않지만,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긴 ‘육사오’ 입장에선 현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최근 ‘한산’에 이어 ‘비상선언’까지 VOD 서비스를 건너뛰고 OTT 쿠팡 플레이에 독점 공개되며 부가 판권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극장 상영작이 IPTV를 통한 홀드백(개봉 후 온라인 공개까지 걸리는 기간)을 거치지 않고 OTT로 직접 가는 건 매우 이례적인 현상. 정확한 액수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투자 단계부터 쿠팡 플레이와 독점 계약을 맺은 ‘한산’ ‘비상선언’은 각각 150억 원, 130억 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작을 놓친 VOD 업체들은 1~2년 전부터 위기를 직감하고 자체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자금력. CJ ENM이나 롯데와 달리,극장도 없고 모태펀드를 꾸릴 수도 없다 보니 30억 원 안팎의 미들급 콘텐츠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대기업에서 관심 갖지 않는 시나리오와 배우로 틈새시장을 노린 건데 첫 작품 ‘육사오’로 대박이 난 것이다.
‘육사오’ 박규태 감독은 ‘북경반점’ ‘달마야 놀자’ ‘박수건달’ 등을 쓴 각본가 출신이다. 이준익 감독과 충무로 영한빌딩을 오가며 본인이 집필한 ‘날아라 허동구’로 연출에도 도전했지만, 흥행 참패. 이 영화 이후 무려 15년 만에 감독으로 금의환향했다. 저예산이다 보니 멀티 톱 캐스팅은 고사하고 낮 신, 밤 신을 몰아 찍으며 발전차 기름값까지 아껴야 했다는 전언이다.
흥미로운 건 이 와중에 톱 배우 송강호가 데뷔 31년 만에 드라마 ‘삼식이 삼촌’ 출연을 선언했다는 사실이다. 평생 극장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던 송강호의 ‘변심’을 놓고 업계에서 많은 말이 나왔다. 이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 건 양질의 자본이 영화에서 드라마로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파이부터 키우고 보는 물량 공세에 주력해온 기존 영화 투자, 제작 문법이 더는 통하지 않을 거라는 매서운 경고다.
실제로 올 여름 텐트폴 빅4 영화의 흥행 성적은 이런 사실을 고스란히 뒷받침한다. 자본의 움직임을 일찌감치 눈치챈 송강호가 글로벌을 겨냥한 OTT 드라마로 자신의 활동반경을 넓힌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코로나를 계기로 관객들이 극장에서 볼 영화와 집에서 볼 영화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며 “기존 투자, 제작 관행을 돌아보고 새 판을 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비옥한 토양을 위해선 천만 영화 한 편보다 300만 영화 3편 나오는 게 훨씬 값지다는 자기 반성이다.
(사진=송강호(위)/영화 ‘육사오’)
뉴스엔 김범석 bskim129@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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