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고 유치한데, 자꾸만 시선이 쏠린다. ‘마라맛’이 장악한 최근 드라마 판에 ‘슴슴한’ 로맨스물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월 8일 JTBC 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이하 립스틱) 7회가 방송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점점 커지는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채현승(로운)과 그를 그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 윤송아(원진아)의 감정 변화가 펼쳐졌다.
어느덧 작품이 전환점에 다다르며 네 사람 관계에도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최근 드라마 판에는 자극적이거나 개성 강한 드라마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이에 비해 ‘립스틱’은 평범한 로맨스 구조를 유지하며 고집있는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작품 자체의 메시지보다는 호불호 없는 로맨스 컷과 익숙한 갈등 전개로 대중성을 저격하겠다는 의도다. 애초에 ‘웹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기에 이 같은 흐름이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립스틱’에서는 유독 많은 클리셰가 발견된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에서 사각관계로 연결되는 과정, 위기에 닥친 여주인공 앞에 늘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는 남주인공, 자신의 마음을 애써 부정하는 여주인공에게 거침없이 직진하는 연하남, 거기에 흔들리는 여주인공의 대사까지. 과장을 조금 보태 ‘눈 감아도 보이는 장면’들이 어김없이 때에 맞게 등장하며 표본 로맨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좋게 말하면 익숙한 재미지만 나쁘게 말하면 진부하다. 아직까지 ‘립스틱’은 확실히 새롭다는 느낌을 주고 있진 않다. 하지만 그 ‘뻔함’ 속 작은 변주들이 묘하게 시청자의 눈을 잡아끌고 있다.
작품을 형성하는 큰 줄거리는 평범하지만 그 안에 숨 쉬는 캐릭터들은 보기보다 입체적이다. 분명한 악인이라 예상했던 이재신과 이효주는 저마다의 과거사와 내밀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금씩 드러내며 이들의 삶을 돌아보고 이해하게 만든다.
채현승 또한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판타지 연하남으로 보이지만 종종 묘하게 빗나가는 성격과 공감 능력으로 꾸준히 윤송아와의 갈등을 만든다. 대부분 인물들이 주어진 상황에 흘러가는 것 같지만 중요한 순간에선 날카롭게 정체성을 드러내며 캐릭터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는다.
이재운(이규한)과 채지승(왕빛나)의 썸, 이세림(박한솔)의 짝사랑, 류한서(최정원)와 채연승(하윤경)의 묘한 기류까지. 주변 인물들의 서사 또한 알차게 활용하며 극에 새로운 재미를 불어 넣었다.
여기에 뻔한 로맨스물에 숙명같이 따라붙는 ‘고구마 전개’는 배제됐다. 처지는 흐름을 견제해 답답한 갈등은 최소화했고, 상황보다 캐릭터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취했다. 덕분에 빠르고 담백한 전개가 가능했고, 전반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안기는 데 성공했다.
심심하게 당기는 틀에 박힌 매력. 그 위에 트렌디한 흐름을 한 방울 섞어 만든 드라마가 ‘립스틱’이 아닐까. 이를 군더더기 없이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호연도 한몫을 한다. 이제 전환점에 도착한 '립스틱'이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JTBC 스튜디오 제공)
뉴스엔 이수민 su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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