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 불가 실력으로 당당히 Mnet '쇼미더머니9' 우승을 거머쥐었다. 힙합 유망주에서 믿고 듣는 래퍼로 성장한 릴보이(Lil Boi, 본명 오승택) 이야기다.
릴보이는 12월 18일 종영한 '쇼미더머니9'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변 없는 결과였다. 지원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그는 1차 예선을 시작으로 2차 예선, 크루 배틀, 음원 배틀, 팀 디스 배틀, 1차 본선, 2차 본선, 파이널 1라운드, 2라운드까지 모든 미션에서 정상에 올랐다. 귀에 쏙쏙 박히는 수려한 랩과 개성 있는 음색, 작은 체구에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존재감을 토대로 한 쾌거였다.
릴보이는 22일 뉴스엔과 인터뷰에서 "무사히 잘 마무리해 너무 속 시원하다. 끝나고 드디어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휴식이 아니더라. 앞으로 더 바빠질 예정이다. 앨범 작업도 작업인데 그 외에도 지금 인터뷰처럼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겼다. 다 좋은 일이다. 덕분에 행복한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어요. '쇼미더머니9'에서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인 만큼 1등을 꾸준히 해왔다고 해서 또 1등을 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대마다 항상 최선을 다했죠."
'쇼미더머니9' 출연은 반강제로 이뤄진 도전이었다. '쇼미더머니9'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개인 SNS에 랩 동영상을 올리는 형식으로 예선 지원자들을 모집했다. 2015년 '쇼미더머니4' 출연했지만 1차 경연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릴보이는 '쇼미더머니9' 지원 기간 중 장난스레 '#쇼미4 지원'이라는 해시태그로 영상을 올렸다가 많은 팬들의 요청과 응원에 힘 입어 '쇼미더머니9'에 출연하게 됐다.
릴보이는 "이번에 지원하게 된 계기 자체가 팬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많은 분들이 원해줬기에 지원했던 거다. 이미 많은 분들 사이에서 내가 시즌9에 나가는 걸로 돼 있더라. 나가는 게 맞다 싶어서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행이 됐다. 그래서 두 번째 출연이었지만 부담감을 안고 지원했기보다 '나가래서 나왔습니다!' 이런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우승을 했으니까 잘 지원했다 싶다. 우승 못했으면 살짝 후회할 뻔했는데(웃음) 우승까지 했으니까 당당하게 잘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2011년 루이(본명 황문섭)와 함께 힙합 듀오 긱스로 데뷔한 릴보이는 데뷔곡 'Officially Missing You'(오피셜리 미씽 유)를 시작으로 '어때(Feat. 하림)', '답답해', '비가오네(Feat. 박수민)', '그냥 가요(Feat. 어반자카파 조현아)', 'Wash Away(Feat. 에일리)' 등을 히트시키며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VMC(비스메이저컴퍼니) 수장 딥플로우 등 일각에서는 긱스가 데뷔 초 선보였던 싱잉 랩 스타일에 대해 진정한 힙합이 아니라며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 릴보이는 '쇼미더머니9'에서 지난 5년여 동안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앓았다고 고백했다.
디스 자체에 큰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릴보이 역시 디스도 힙합 문화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후 동료 래퍼들과 함께 디스 랩을 발표하며 반격하기도 했다. 가장 큰 배신감을 초래한 대목은 믿었던 지인(긱스 앨범 참여 프로듀서)이 자신을 디스하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았다. 릴보이는 '쇼미더머니9' 출연 후 긱스 앨범 참여 프로듀서에게 직접 사과를 받은 것은 물론 '쇼미더머니9' 프로듀서였던 자이언티, 기리보이, 함께 경연을 펼쳤던 원슈타인, 칠린호미 등 좋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최고의 무대들을 선보였다.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좋은 음악과 무대들을 선보임으로써 다수 힙합 팬들의 인정까지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없이 유의미한 도전이었다.
릴보이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많이 나아진 상태라며 "'쇼미더머니9'를 통해 뭔가 상담받은 기분이었다. 확실히 심적으로 훨씬 편해진 것 같다. 자기(자이언티+기리보이) 팀 분위기가 딱 이거였다. 서로 대결을 하더라도 진짜 기분 좋게 좋은 음악을 만들자는 분위기"라고 회상했다.
"원래 작업을 즐기는 편이에요. 음악 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작업이 재밌어서거든요. 작업을 할 때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얹어지며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이 커요. 그걸 이번에도 많이 느꼈어요. 멜로디가 바뀌고 새로운 가사가 입혀지고. 정말 재밌었어요. '쇼미더머니'에 나오기 전에는 그런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친구들이랑 모여 서로의 음악을 듣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게 재밌는 건데 근 5년 동안은 대부분 방 안에 갇혀서 혼자 음악을 듣고 만드는 과정의 반복이었거든요. 그래서 사고도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쇼미더머니9' 출연 후 달라진 점으로는 마음가짐과 경제적 여건 등을 꼽았다. 릴보이는 "진짜 모든 것들이 많이 변했다. 예를 들어 3개월 전의 나라면 지금쯤 인터뷰가 아닌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국밥을 특으로 먹을 수도 있고. 행복한 고민들이 많은 시기다. 지금 레이블(하프타임 레코즈)이 있다고 하긴 하지만 사실 인디 레이블이나 다름없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돈이 들어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제 그런 걸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경연 무대에서도 한층 단단해진 릴보이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릴보이는 'CREDIT'(크레디트) 무대에서 '난 그저 방구석에서 변하는 게 무서웠기에 두꺼운 이불을 덮어놨네', '난 기준을 남에게 뒀었지 I know 이제서야 주변을 봐'라는 가사를 통해 심적으로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내고 달라진 마음가짐에 대해 노래했다.
"전 항상 제 음악, 음악에 담은 제 의도가 순수하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볼 때는 상업적이고 계산적으로 보였는지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죠. 'CREDIT' 가사는 그런 기준, 힘든 시기에 했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한 거였어요. 사실 그건 남의 기준이지, 제 순수한 의도를 스스로 알고 있다면, 제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는 내용이에요. 남과 비교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데 그런 걸 그만하자는 의미도 담았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사진=하프타임 레코즈, Mnet 제공)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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