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맛집'이라는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배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순정남부터 '남산의 부장들' 경호실장 곽상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을 보여온 이희준. 그가 휴먼 코미디 '오! 문희'를 찍으며 느꼈던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아빠가 된 이후 달라진 연기관도 들어볼 수 있었다.
나문희와 이희준의 탄탄한 모자 호흡, 예측불허의 좌충우돌 수사 속 유쾌한 웃음과 따스한 감동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오! 문희'는 코로나19 시국에도 불구하고 25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연일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싱글 대디 '두원' 역을 맡은 이희준은 실제 한 아이의 아버지다. 모델이자 방송인 이혜정과 2016년 결혼한 그는 지난해 12월 아들을 얻었다.
"대단한 영웅 아닌,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이도 키우는 아버지가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헤쳐나가는 모습이 공감됐어요.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까 육아 중인 모든 사람이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육아란 너무나 피곤한 일이고, 양보하며 포기해야 할 것도 많은데 아무렇지 않게들 하고 있잖아요. 우리 영화 속 '두원'도 그런 인물 중 한 명인거죠."
전작 '남산의 부장들'에서 경호실장 곽상천 역을 맡아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어느새 푸근한 충청도 '아재'로 변했다. 그는 '남산의 부장들'을 두고 "연기하며 신이 났던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이병헌 선배님, 이성민 선배님 모두 제가 어떻게 연기하든 다 받아줄 수 있는 분들이잖아요. 상대방을 존경하고 믿기 때문에 놀이터처럼 스트레스 받지 않고 연기했던 거 같아요. 이번 '오! 문희'는 좀 달랐어요. 물론 나문희 선생님이 계셨지만, 혼자 해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오히려 더 어려웠죠."
때문에 '오! 문희'에 출연하며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여실히 느꼈다는 이희준. 그는 '대배우' 이성민이 첫 주연을 하던 순간을 옆에서 지켜봤다며, 그 순간을 절로 떠올리게 되더라고 고백했다.
"이성민 형님과 '로봇, 소리'(2016)라는 영화를 찍을 때예요. 그게 선배님의 첫 주연작이었거든요. 그날 선배님께 '형님의 첫 주연작을 바로 옆에서 함께 해서 좋습니다'라고 말한 게 생각나요. 정말 긴장하시더라고요. 마치 영화 전체를 자기가 연출한 것처럼. 연극 무대에서도 한 번 떤 적이 없는 분인데, 무대 인사를 하면서도 덜덜 떠시더라고요. 주연이라는 게 그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 문희'를 찍으며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정말 내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 제목이 나문희의 이름을 딴 '오! 문희'인 것에 대해선 "솔직히 부럽다"고. 그러면서 "언젠가 내 이름을 딴 영화도 나올까?"라 기대하기도 했다.
"한 50~60년 연기하면 제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어 써주는 작가분도 있지 않을까요? 상상해보면 그 주인공은 아주 '돌아이'일 거 같아요. 하하. 그런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강렬한 역을 주로 맡아왔지만 실제 성격은 '극소심'하다는 이희준. 그는 무려 6년 동안 아침마다 108배를 해오기로도 유명하다. 스스로를 "매우 소심하고, 눈치도 많이 보고, 어제의 내가 저지른 부끄러운 행동을 반성하면서 108배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최근에는 MBC '라디오스타'와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잇따라 출연하며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그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이기에, 방송이 나간 후 수많은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여러 역할을 통해 연기하는 모습만을 보여드리는 것이 저의 로망이기는 하지만, 욕심이겠죠. 영화 홍보 활동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니 예능을 통해 사적인 일화들도 이야기 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예능에서의 모습을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 감사해요. 특히 가족 이야기를 좀 하게 됐는데, 많이 노출된 만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아들이 생긴 후 작품 선택에도 영향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아이가 말도 못하고 기어다니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아이가 커서 '저게 아빠 작품이었어?' 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은 생겼다"고 귀띔했다.
"빨리 아들이 쑥쑥 컸으면 좋겠어요.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거든요."(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뉴스엔 배효주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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