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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의문만 남긴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종합)
2020-08-02 00:23:21
 


[뉴스엔 이민지 기자]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이 미스터리로 남았다.

8월 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범인의 흔적을 추적했다.

2009년 2월 8일 차가운 바람이 불던 제주도. 외진 곳에 있어 인적이 드문 애월읍 고내봉 인근 농업용 배수로에서 여성 변사체가 발견됐다. 그녀의 정체는 시신발견 일주일 전인 2월 1일,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고 난 후 실종된 양수정(가명) 씨였다. 수정씨가 실종된 다음날부터 제주도엔 비가 내렸다. 실종자 수배 전단 속에서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수정씨는 토요일 저녁 여고동창들을 만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길어진 수다가 끝난건 새벽 2시30분이었다. 남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했던 수정씨. 그런데 두 사람은 그날 담배 문제로 말다툼을 했다. 경찰이 확인한 통화 기록에 따르면 남자친구 집에서 나온 수정씨는 새벽 3시, 단골 콜택시 회사에 전화했다. 남자친구에게 실망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3시3분이었다. 수정씨는 콜택시가 오지 않자 3시 8분 114에 전화를 걸었지만 1초만에 끊었다. 이후 수정씨의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정씨는 실종 일주일째 되던 2월 8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실종 당일 입고 나간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집에서 4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수정씨. 그런데 시신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실종된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전혀 부패하지 않은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샴푸 향기가 확 났다. 사망 시간, 절대 하루 이상 지난 시신이 아니라 논란이 됐다"고 말했다. 논란 속에 경찰은 피해자가 실종 당일 새벽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가방 안에 발견된 휴대전화가 실종 직후인 4시 직후에 꺼진 뒤 다시 켜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남자친구의 집 앞에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살해됐다는 것을 가정하고 도로에 있던 CCTV 등을 살폈다. 3시8분부터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진 4시3분 사이 이 길을 걸어간 택시를 모두 조사했고 택시기사 박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박씨의 당일 이동동선이 불명확하고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사건과 관련 있는 물품을 다른 물건과 섞어서 실험 대상자가 인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혈압, 맥박 등으로 테스트했는데 피해자 물품을 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런데 부검 결과는 경찰 조사와 달랐다.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성폭행 흔적은 없었고 내부 장기 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부검의는 피해자가 시신 발견 당일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 시신 발견 당일 2월 8일 알리바이가 확인된 박씨는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그런데 지난 2018년 5월 경찰은 택시기사 박씨를 용의자로 검거했다. 수사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던 경찰이 법의학자 등과 함께 몇 차례의 동물실험 끝에 배수로의 응달과 차가운 제주 바람이 만나 냉장 효과를 만들어내 시신의 부패를 늦췄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사건의 반전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심과 2심에서 박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현재 8월로 예정된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은 상황이다. 수정씨의 친구들은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수많은 증거들이 인정되지 않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8년, 사건 발생 9년만에 박씨를 검거한 경찰은 박씨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신원을 감추고 살아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동물실험으로 사망 시간 미스터리가 해결됐을 뿐 아니라 CCTV와 미세섬유 등 기존 증거물도 재분석 했다고 브리핑했다. 며칠 후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당시 집으로 돌아간 박씨는 SBS 취재팀과 만나 "그거 때문에 생활이 곤란한 상황이다. 언론에서 나와서 했던 이야기, 연속극 같은 그런 얘기들이 많다. 은둔생활 했다는 내용들은 나와 맞지 않는 글들이다. 난 평범하게 살았다. 지금 채무가 있어서 올라왔고 그거 때문에 일하고 있다"며 주민등록 말소, 휴대전화 명의 변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빨리 진범이 잡혔으면 좋겠고 그 후에는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거다. 날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박씨의 변호인을 만났다. 변호인은 "그 시간대 거기 지나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구속되고 재판받고 그런 점이 억울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사건 당일인 2월 1일 새벽 내내 택시 영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추정하는 피해자의 이동경로 차량번호 판독기에 찍힌 것은 우연이라는 것. 경찰은 박씨의 알리바이를 믿지 않았다. 경찰은 "진술 운행 경로상의 CCTV는 확인되지 않았고 진술 내용이 번복되고 내용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박씨 측은 차량번호 판독기 외에 경찰이 확인했다는 CCTV 영상은 박씨 차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에는 방범용 CCTV가 많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주로 상가나 가정집에 딸린 CCTV들이 전부인 탓에 영상의 해상도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30대, 50대 남자 승객을 태웠다는 박씨의 알리바이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씨가 일했던 택시회사 관계자는 "악의적인 사람이 아니다. 택시기사는 3,4개월 정도 했다"고 박씨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박씨의 사건 당일 운행 경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박씨의 운행일지를 확인해보니 사건 당일 사납금을 내지 않고 다음날은 월차, 다음날은 정기 휴무일로 일을 하지 않았다. 밀란 사납금을 항상 여자친구 이름으로 입금했다는 박씨.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자친구를 태우러 가곤 했던 박씨는 당일 새벽에는 별다른 연락없이 가지 않았다고. 박씨 변호인 측은 "그분 남편이 내려와 있어서 연락 안했던 걸로 이야기 했다. 평소에도 싸우면 연락 잘 안한다고 한다. 양쪽 진술이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사건 당일 이른 아침 박씨의 전화를 받았다는 지인은 "모텔 방을 치워달라고 전화가 왔는데 나중에는 동생한테 얘기하겠다고 했다. 이사 간다고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돈을 빌려준 적도 있다. 전화도 새로 사야 된다고 하면서 내 이름으로 개통해버렸다. 그 사람하고 연락도 안되고 나도 너무 황당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지인과의 문자 내역을 삭제한 것을 보고 증거인멸도 의심한 바 있다.

경찰은 또 "미세증거가 교차증거로서 여러 군데서 발견됐다. 이런 부분이 결합하면 더 강력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의 택시에서 피해자의 옷과 수상한 동물털이 발견됐고 피해자 시신에서도 박씨의 옷과 유사한 미세섬유가 발견된 것이다. 변호사 측은 "택시에서 발견된 섬유가 많을거 아닌가. 애초에 경찰이 피해자 옷을 들이대고 이거랑 유사한걸 찾아달라고 타겟팅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도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미세섬유를 감식했던 홍성욱 교수는 "타깃 섬유는 극히 일부분이고 무관한 섬유가 거의 대부분인게 일반적이다. 수백개 섬유 중 타깃 섬유 하나를 골라내는게 어렵다. 그런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은거다. 하나가 유사한거랑 서로 교차 전이돼 유사한거랑 의미가 다르다. 판사님이 억울한 범인 안 남기려고 고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피해자 실종 당일 박씨가 태웠다는 30대 남자와 50대 남자 중 50대 남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박씨가 50대 남자를 태웠다는 파출소에서 애월항 인근 물류마트까지 간 경로는 택시기사들이 선호하는 경로는 아니라고 한다. 택시 기사들은 "중산간길로 애월에 갔다는건 이해가 안된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손님이 그렇게 원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박씨는 "내가 일주도로로 가는게 빠르다고 했는데 무수천 쪽 선과장에 불이 켜졌는지 보자고 했다"며 승객이 먼저 중산간길로 가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씨 변호인은 수정씨의 남자친구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콜택시와 114에 전화한 후 택시를 타지 않고 남자친구를 만난 것 아니냐는 것. 변호인은 "1월 31일 저녁에 세차했는데 거기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거기서 피해자 유전자가 별견된다. 담배문제로 싸웠다는 남자친구 진술에 신빙성이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반면 당시 수정씨 남자친구는 "그분은 그 사람을 변호해야 하니까 꼬투리를 잡고 있는거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 실종 직후 제일 먼저 용의자로 지목됐던 것은 남자친구였지만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사건 당일 그의 차량은 시신 발견 장소로 차가 이동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 사망 시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피해자 혈중알코올 농도를 피해자가 따져 휴대전화가 꺼진 4시4분 이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판결문을 살펴본 유성호 교수는 "재판부 판결문엔 오류가 있다. 위드마크 공식의 적용도 계속 변화해왔다. 술자리 행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피해자는 친구들과 즐거운 술자리였고 마시고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술이 깼다"고 분석했다. 이어 "법원의 판단은 위드마크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적용해서 6시간 이후로 밀어버렸는데 피크 농도를 앞으로 당겨서 사망시각은 술자리 종료 이후 4시간 이내로 보는게 맞다는게 내 판단이다"고 설명했다.

직접 증거가 없는 이번 사건은 재판 초기부터 치열한 공방이 예상됐다. 검찰 공소장의 핵심 내용인 범인의 이동경로와 사망시간까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실종 당일 피해자의 행적을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피해자의 마지막 행적이 확인된 남자친구의 맨션 앞. 수정씨가 당시 남자친구 집에서 집까지 택시로 갈 수 있는 경로는 4가지이다. 범행 당시 각 도로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새벽 3시8분에 택시 주행을 시작했다.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는 새벽 시간에도 차량 통행이 적지 않고 상점 불빛도 끊기지 않았다. 반면 애조로와 중산간도로는 몹시 어둡고 인적이나 차량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재판부는 그런 점 때문에 범인이라면 애조로나 중산간도로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범죄심리학자들은 "재판부에서 제시한 루트는 타당성이 가장 떨어진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선택할 경우 그곳에서 범행과 유기가 완료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시신 유기 장소인 배수로도 인적이 드문 곳이긴 하지만 범인 입장에서 애조로나 중산간도로보다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것. 더구나 피해자가 평소 이용하지 않는 길로 접어들었다면 으슥한 곳에 접어든 순간부터 범행이 시작됐을텐데 시신과 사건 현장 어디에도 계획 범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시신보다 이틀 먼저 발견된 피해자 가방 속 휴대전화는 장식품이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피해자 손의 상처를 볼 때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잠이 들었거나 구조 요청을 하려던 순간 범인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방이 발견된 장소 역시 쉽게 던져버릴 수 있는 도로가 돌담 안쪽이었다. 범인은 지갑 안 현금 제외한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상태였다. 피해자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이 그대로였다는 것. 전문가는 "시신 은폐 노력이나 시도 없이 거의 그 지점에 피해자의 시신을 유기하고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이 종료된 시점에서 모든 범행은 끝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의 증거가 보존된다면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남아있는 증거를 통해 이 사건의 범인을 특정할 순간이 오리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폐지되고 각 지방경찰청마다 미세수사팀이 신설됐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전국 미제 수사팀이 담당하고 있는 288건 중 59건이 해결됐다. 그 중에는 이번 수사처럼 과학수사로 찾아낸 증거가 있음에도 무용지물이 된 사건도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수사기록은 검찰이, 증거물은 경찰이 보관을 담당한다. 지금은 유죄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직접 증거로 인정되는 DNA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간접증거에 불과했다. 과학 수사 기법은 꾸준히 발전해 오래된 미제사건 증거물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 정의를 실현해온 만큼 이번 사건 역시 증거물이 안전하게 보관된다면 또다른 반전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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