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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한필성 한필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끈 남매
2018-05-27 12:03:58
 


[뉴스엔 김명미 기자]

이산가족 한필성 한필화 남매의 애끓는 사연이 공개됐다.

5월 27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한 오누이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됐다.

1971년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는 한 남매의 이야기가 세계 언론을 장식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한필성과 북한에 사는 한필화. 이것은 분단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 남과 북에 있던 그들이 어떻게 통화를 할 수 있었을까.

한필성은 1971년 우연히 신문 속에서 북한에 두고 온 넷째 동생 한필화의 이름을 보게 됐다. 뜻밖에도 신문에 실린 한필화는 북한의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였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나라로 인정받지 않아 오랫동안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 했지만, 1964년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당시 22살이었던 한필화는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거머쥐면서 북한 최초의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스피드스케이팅 아시아 여자선수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 한필화 선수가 국제 대회 참가를 위해 삿포로로 온다는 것.

그 후 한필성이 한필화의 친오빠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두 사람은 헤어진 지 21년 만에 전화 통화를 하게 됐다. 이날 '서프라이즈'에서는 한필성과 한필화의 실제 통화 음성이 공개됐다. 애끓는 목소리로 울부짖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을 적셨다.

결국 남과 북은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기로 합의했고, 한필성은 곧바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는 끝내 실현되지 못 했다. 남북 양국이 상봉 장소를 두고 정치적으로 대립하다 결국 북측에서 한필화를 데리고 돌아간 것.

그러나 이들 남매의 사연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 문제가 대두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산가족 만남이 추진됐고, 1985년 남과 북 이산가족 상봉이 최초로 이뤄졌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만날 기회를 얻게 됐다. 1990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 한필화가 북한 임원 자격으로 일본을 재방문하게 된 것. 이에 두 사람은 북한 선수단과 각종 언론사의 도움으로 두 번째 통화를 하게 됐다.

그리고 1990년 3월 8일 한필성 한필화 남매는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서 감동의 재회를 하게 됐다. 잠들어있는 한필화를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진 지 40년 만의 재회였다. 이후 두 남매는 꿈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올림픽 경기를 응원하고, 숙소에서 함께 머무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한필화가 북한으로 돌아가면서 두 사람은 다시금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됐고, 한필성은 이후 생을 마감했다.(사진=MB


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캡처)

뉴스엔 김명미 mm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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