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준이 범인이라는 것을 시청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SBS 수목드라마 ‘유령’(극본 김은희/연출 김형식 박신우)은 1회에서 시청자에게 드라마의 첫 실마리 여배우 신효정(이솜 분) 살해사건을 던졌다. 신효정 사건을 파헤치던 중 해커 하데스 박기영(최다니엘 분)은 경찰인 김우현(소지섭 분)이 관련되 있음을 알았고 비밀을 안 댓가로 김우현은 죽음을, 박기영은 전신화상을 입었다. 결국 박기영이 페이스오프를 통해 김우현의 삶을 살게 됐다.
3회와 4회에선 신효정에게 악성댓글을 남긴 사람들이 차례대로 죽어가는 ‘신효정 놀이’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김우현 행세를 하는 박기영과 유강미가 찾아낸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은 신효정의 전 매니저였고 팬텀 조현민은 아니었다. 시청자가 알고 있는 팬텀 조현민이 다시 한 번 뒤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5회 드디어 시청자가 모두 알고 있는 진범 조현민이 등장했다. 드라마는 조현민이 진범일지 시청자를 헷갈리게 만들기보다 대놓고 조현민의 신효정 살해사건 영상을 되짚어 조현민이 진범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시청자가 진짜 범인을 다 알고 있는데도 ‘유령’은 어떻게 시청자가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답은 퀼트 같은 구성에 있다. ‘유령’은 1회 혹은 2회를 통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전형적인 추리극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단 사건 하나가 해결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박기영과 유강미는 사건 해결과 동시에 연결고리를 따라가며 더 큰 사건, 진짜 범인의 머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청자는 범인이 누군지 궁금한 것보다 두 사람이 범인을 쫓아가는 과정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기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조현민의 모습이 시청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도 긴장감에 한 몫 톡톡히 했다.
추리극의 전형은 시청자가 극중 주인공들처럼 범인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굴까 추측하고 맞췄을 때의 기쁨, 틀렸을 때의 허를 찔린 기분 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유령’은 추리극의 전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시청자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일명 쫄깃한 드라마다. (사진=SBS 수목드라마 ‘유령’ 캡처)
이나래 nal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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