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대통령인 고(故)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국장(國葬) 영결식이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서 조기가 게양된 가운데 거행됐다.
이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치러지는 국장이며, 역대로는 지난 1979년 현직 대통령이었던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 이후 처음이다. 지난 5월 서거한 제16대 대통령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이날 장례식은 영결식, 운구의식, 안장식 순으로 진행된다.
장위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단독으로 맡았으며, 장의위원은 2,375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구성됐다.
이날 영결식은 국민의례, 묵념, 약력보고, 조사 및 추도사 낭독, 종교의식, 생전영상 상영, 헌화와 분향, 추모공연, 조총 발사 순으로 거행된다. 사회는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과 연극인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맡아 영결식을 진행한다. 약력보고는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사는 한승수 국무총리가, 추도사는 박영숙 한국사회환경정책이사장(미래포럼 이사장)이 각각 맡는다.
이어 5분 분량의 생전 영상이 상영된 후 헌화와 분향 순서가 진행된다. 이희호 여사와 유가족, 이명박 대통령-김윤옥 여사 내외, 전직 대통령, 장의위원장, 3부 요인, 민주당을 비롯한 정당대표, 조문사절, 주한외교단 순으로 헌화와 분향이 이어진다. 헌화와 분향 순서에서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씨는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는다.
헌화와 분향 순서 뒤로, 성악가인 소프라노 김영미 한국종합예술대학교 교수와 평화방송 어린이합창당, 코리아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그대 있음에' 등 추모공연이 이어진다. 특히 추모공연은 ‘고향의 봄’,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 부르던 노래들로 구성됐다.
영결식 입장은 이날 낮 12시부터 진행돼 오후 1시 30분까지 완료되며 국회 공식 빈소는 오전 8시를 기해 운영이 중단됐다. 대신 국회 정문 앞 임시분향소를 설치해 영결식이 끝나는 오후 3시 30분까지 조문을 받고 이후 폐쇄된다. 이밖에 서울광장 및 전국의 분향소는 23일 밤 자정(24일 오전 0시)까지 운영된다.
영결식 30분 전인 오후 1시 30분 발인이 진행되며 영결식 직후 운구의식이 이어진다. 이날 오후 2시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영구차가 입장한 뒤 사회자 조순용(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손숙(연극인, 전 환경부 장관)씨의 개식 선언으로 영결식이 시작된다. 조악대의 연주 속에 국기에 대한 경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이 이뤄지고,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김 전 대통령의 약력을 보고한다.
그 다음으로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가 조사를, 박영숙 한국사회환경정책이사장(미래포럼 이사장)이 추도사를 각각 낭독하고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집전된다. 육ㆍ해ㆍ공군 조총대원들이 21발의 조총을 발사하는 것을 끝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된다.
영결식이 끝난 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20.5km)까지 손자 김종대(둘째 김홍업 장남, 86년생)군이 영정 사진을 든 가운데 운구 의식이 진행된다. 운구행렬은 국회의사당을 출발해 동교동 사저와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거쳐 광화문 사거리를 통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한 뒤 서울역 등을 거쳐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한다. 시속 3-40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하는 운구행렬은 가로 5m, 세로 3m 크기의 대형 태극기를 실은 캐딜락 오픈카가 앞장서고 그 뒤를 영정 차량과 영구차, 유가족과 측근들이 탄 승용차 20여대가 뒤따른다. 경찰은 사이드카 30대와 오픈카 4대, 순찰차 2대로 호위하고, 행렬이 통과하는 시내 도로는 구간별로 통제된다.
유족들은 동교동 사저와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에 잠시 머물며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사저의 정원, 서재, 거실, 식당 및 도서관의 집무실, 전시실 등을 둘러본다. 지난 20일 거행된 고(故) 김대중 전(前) 대통령 입관식에서 이희호 여사의 절절한 마지막 편지가 국민의 심금을 울렸으며 이를 창으로 만들어 사저 정원에서 명창 안숙선 선생의 추도창이 공연된다. 이 여사는 당시 관 속에 마지막 선물로 손수건과 성경책, 병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배를 덮었던 덮개와 함께 자신의 자서전 ‘동행-고난과 행복의 회전무대’에 마지막 편지를 써 함께 넣었다. 특히 이번에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김 전 대통령 사저의 2층 서재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명상을 하는 공간이다. 이 서재에는 김 전 대통령 책상과 책꽂이가 놓여 있고, 벽 한편에 족자 하나가 걸려있는데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다. 내용은 사서 중 중용에 나오는 ‘윤집궐중(允執厥中)’으로 ‘진실로 그 가운데를 취하라’는 뜻이다. 서재 한 가운데 책꽂이가 있고, 책꽂이 너머로 김 전 대통령이 1주일에 3번씩 투석치료를 받기 위해 설치된 의료장비와 간이침대가 놓여 있다.
이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잠시 멈춰 이희호 여사가 직접 조문객들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날 오후 1시 30분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국민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 운구행렬은 김 전 대통령이 야당시절 장외 집회를 했던 서울역 광장에 잠시 머물러 청운의 꿈을 안고 호남선을 타고 도착한 서울역을 바라보며 생전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도 갖는다.
이후 장지인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해 안장식을 갖게 된다. 운구 차량이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도착한 뒤 유가족과 동교동계 측근 및 민주당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이 거행된다. 묘역은 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부에 위치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육영수 여사 내외의 묘소가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의 묘소는 봉분과 비석, 상석, 추모비 등을 합해 264㎡(16mⅹ16.5m, 80여평) 규모로 조성됐다.
안장식에서는 하의도 흙 한줌이 뿌려진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안장식은 종교의식과 헌화 및 분향, 하관, 허토(상제들이 봉분하기에 앞서 흙 한 줌을 관 위에 뿌리는 의식) 등 순서로 진행된다.
돌아가신 분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의 소재지를 기록해 땅에 함께 묻는 지석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성함과 호, 출생일과 부모, 성장과정과 정치 역정, 결혼, 일본 납치 사건 등 5번의 죽을 고비, 대통령 취임과 정상회담, 왕성한 퇴임 이후의 활동, 저서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를 새긴 돌을 땅속에 함께 묻는다.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86세를 일기로 서거하셨다는 내용과 퇴임 후 국가원수 첫 국장, 국립서울현충원, 세 아들과 자손의 이름을 모두 기록했다.
종교의식과 헌화, 분향 등을 거쳐 하관과 봉분 절차가 마무리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악대의 진혼곡과 조악 연주를 뒤로 하고 영면에 들게 된다.
지형준 jeehouse@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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