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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내 눈과 마음이 배우가 되고 있다”(인터뷰 ③)
2008-10-11 08:58:03
 

[뉴스엔 글 서보현 기자/사진 지형준 기자]

시작.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에서 언제를 새로운 출발점이라 봐야 하는 것일까. 분명 인생은 진행 중이니 시작은 존재할 것이고 그 시점이 어디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의 색은 달라질 테다. 하지만 섣불리 어느 순간을 시작이라 말하기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첫 번째 시도를 시작이라 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과 몸을 열어 뛰어든 순간을 시작이라 해야 하는 것일까.
박해일에게 있어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은 언제였을까. 세상에 박해일의 이름을 내걸고 연기를 시작한 2000년 연극 ‘청춘예찬’일까 영화인으로 발걸음을 뗀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이름과 이미지를 확실히 새겨준 2003년 ‘국화꽃 향기’?

박해일의 시작을 어느 순간으로 결정하기에는 그의 연기 인생은 오묘하다. 아니, 그것보다는 박해일이 지금에서야 연기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매 번 작품에서 자신의 삶의 기운을 다해 자신을 녹여낸다는 박해일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박해일의 연기인생 출발점은 지금 이 순간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 김혜수? 아니, 내가 사랑한 사람 조난실

박해일과 김혜수.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만났다. 화려하지만 스산한 느낌이 감도는 1930년대 경성 한 복판. 그 곳에 박해일과 김혜수가 자리했다. 영화 속에서만 살고 있던 남자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다 필름의 매력에 빠져든 여자의 만남은 예상 외로 멋들어졌다.

두 사람은 영화 ‘모던보이’에서 처음 만났다.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철없는 해명과 “언젠가는 조선 땅에서 조선어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조난실은 박해일 김혜수의 몫이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시간을 거슬러 손을 맞잡게 됐다.

“조난실 역에 김혜수 선배가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난실과 정말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워낙 김혜수 선배가 많은 작품에서 연기한 베테랑이고 해서 어려운 마음을 가지게 된 건 사실이었죠. 그런데 만나자마자 너무나 시원시원하게 ‘만나서 반가워요’하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거 있죠. 김혜수 선배 덕분에 촬영 분위기가 편하고 좋아졌다니까요.”

‘모던보이’는 박해일과 김혜수 두 사람이 이끌어 가는 영화다. 난실을 만나면서 달라지는 해명의 삶을 그리고 있는 ‘모던보이’는 두 배우의 재량이 우선시 돼야 했다. 그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박해일과 김혜수의 조화. 박해일은 이 공을 김혜수에게 돌렸다. 김혜수의 능수능란함과 밝은 에너지가 ‘모던보이’의 숨을 틔워줬다는 박해일이다.

“우리 두 사람이 각자에게 가지고 있던 부담감이 빨리 줄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해명 역할 자체에 대한 부담이 워낙 커서 어떻게 영화를 이끌어 가야하나라는 부담이 적지 않았거든요. 사건의 포문을 여는 영화 초반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았고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런 제 긴장을 풀어준 사람이 바로 김혜수 선배에요. 저 뿐 아니라 감독님과 스태프들까지도요. 정신적으로 참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치열한 시대에서 꽃 피웠지만 애절했다. 그것은 그들의 눈빛과 손짓이 닿는 곳곳이 애달팠기 때문일 테다. 영화 속 박해일이 김혜수를 보는 눈빛은 해명의 그것이었고 김혜수에게도 해명을 향한 난실의 절절함이 묻어 있었다. 흥겨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술집과 어렴풋한 조명 빛이 두 사람을 감싸던 창가 가장자리에서나 운명의 기로에 서서 악을 질러대던 그 순간까지도 두 사람은 자신의 눈동자에 상대를 담고 있었다.

실제 촬영현장에서 두 사람은 박해일 김혜수라는 이름을 버렸다. 그들은 이해명 조난실로 살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박해일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일은 영화가 그들의 손을 떠나는 날까지 이어졌다. 박해일은 왜 그랬는지 경쾌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풍부한 감정을 이끌어 냈고 스스로에게 참 많은 위안을 주었다는 박해일이다.

“카메라 앞에 서면 아무 것도 없어요. 진짜 매혹을 느낀 난실이든 도망가다 잡힌 난실이든 그저 난실밖에 안 보였고 김혜수라는 배우를 난실로 생각했어요. 그 외적인 감정들은 다 쳐냈죠. 첫 장면부터 마지막 촬영을 할 때까지 난실이라고 부른 것도 그 때문이에요. 전 김혜수를 난실이라 부르고 그는 또 날 해명이라 부르고 그랬던 거죠. 서로 그렇게 극 중 배역에 빠져있고 상대를 그렇게 보니까 집중하기가 한결 좋아지더라고요. 감독님에게도 도움이 됐을거에요. 박해일 김혜수라는 인물에서 한 번 걸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해명과 난실을 보게 됐으니까. 사실 이런 게 여느 작품에서나 가능한 일은 아니에요. 캐릭터마다 다 특징이 다르니까요. 해명과 난실은 그렇게 해서 도움을 많이 받은 인물이었던 거죠.”

◆ 이제야 보이는 나 아닌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모던보이’의 정지우 감독은 박해일이 “신기에 가까운 몰입을 보였다”고 극찬했다. 생각해보면 박해일은 지금껏 실망을 주지 않는 배우였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중의 하나. 자신을 최고라 여겨주는 사람과 함께 작업한 박해일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해피엔드’를 참 감동적으로 봤어요. 영화 자체의 톤이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다가왔죠. 기회가 되면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2003년도에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안타깝게도 무산되고 말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모던보이’는 지난 5년의 한을 푼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 영화에서 그 때의 아쉬움과 슬픔을 죄다 풀어냈어요.”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무게만큼 많은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열편 남짓한 영화를 해 오면서 그의 이름이 전면으로 걸린 것은 고작 몇 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박해일을 향한 관객의 신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박해일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는데 정작 그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때때로 확인하고 있었다. 연기가 좋아 무작정 배우의 세계에 발을 뻗었던 그때와 지금의 박해일은 분명 달라졌다. 박해일이 보는 박해일은 예전보다 생각이 더 깊어졌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이제 갓 세상을 향한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박해일의 연기인생은 어쩌면 지금부터가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점점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초반에 한 두 작품을 하면서는 내가 못하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만 보고 좁게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쯤 되니 사람 관계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네요. 시선이 열린다고나 할까.”

박해일은 몸으로 영화라는 작업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익혔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체험하면서 박해일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했고 어색하지 않게 배우의 옷을 입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박해일이 마음을 여는 순간, 배우 박해일이 드러나고 있었다.

“영화라는 것이 수십 명 수백 명들과 함께 해나가는 거잖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하나씩 작품을 해나가면서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여러 일을 겪다 보니 마음이 열리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동안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긴 쌓였겠죠. 좀 더 여유로움을 찾으려고도 하고. 그게 박해일이라는 사람이 현장에서 변하게 되는 모습이 될 거에요.”

서보현 zmsdodch@newsen.com / 지형준 jeehouse@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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