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유쾌한 도전, 미국선 비하?"…조나단 유튜브 썸네일 속 'blacks' 표기 해외서 논란 확산
품사 하나에 얽힌 아픈 역사 vs 조나단이 가진 '자기 명명권'…글로벌 잣대 딜레마
지난달 23일, KBS 1TV '전국노래자랑' 서울 중구 편에 방송인 조나단이 출연했다. 그는 흑인 친구 3명과 'Korean Black Soul', 줄여서 'KBS'라는 팀명으로 무대에 올라 최예나 '캐치! 캐치!'를 선보였다.

- ▲ 조나단의 영상에 올라간 ‘blacks’표현이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조나단 공식 유튜브 캡처

- ▲ 조나단은 인종적 특성을 이용한 자학 개그를 재미 요소로 삼아오기도 했다/조나단 공식 유튜브 캡처
■ ‘blacks는 모욕적 단어’…미국 네티즌이 발끈한 진짜 이유
문제가 된 요소는 조나단 본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해당 무대 클립 제목과 썸네일 문구였다.
게시글엔 '예나한테 캐치캐치 배워서 전국노래자랑 나간 흑인들'이라는 한국어 제목이 "YENA teaches blacks 'catch catch' and enter the singing contest"로 옮겨졌다.
영상 썸네일에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 로고를 패러디한 'BLACKS'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이를 본 미국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blacks는 비하적 표현"이라는 비판이 확산됐다.
미국 청자들의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영어에서 형용사를 명사로 바꿔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은 사람을 하나의 속성으로 환원하는 어감을 갖는다. 'Black people'과 달리 'blacks'는 인종적 특성이 그들 존재를 이루는 전부인 것처럼 들린다는 맥락이다.
명사형 'blacks'는 인종 분리 시대 백인들의 화법,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인구 분류 언어와 계보를 같이한다. 반면 형용사 'Black'은 1960년대 흑인 자긍심 운동이 쟁취한 단어다. 같은 어근이라도 품사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를 소환한다. 미국 시청자가 이 단어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은, 그들의 언어사 안에서 학습된 자연스런 반응이기도 하다.
■ 콩고 태생 조나단에게 '미국의 잣대'를?…'자기 명명권' 침해 역설
문제는 그 감각이 적용되는 범위다. 'blacks'에 대한 금기는 '영어권 보편'조차 아니다. 해당 단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공식 인구통계 범주로 쓰인다. 서아프리카 영어권에서는 중립적으로 통용된다.
조나단이 태어난 콩고 모국어인 프랑스어에서 흑인을 뜻하는 'les Noirs' 역시 표준적 표현이다. 한국어 '흑인'도 마찬가지다.
콩고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그의 언어 세계 어디에도 그 단어를 금기로 만든 역사는 없다. 모욕은 원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번역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자기 명명권이다. 흑인 커뮤니티 내부에서 특정 단어 사용이 용인되는 근거는 '말의 뜻은 화자가 속한 공동체와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원리다. 이 원리를 일관되게 적용하면, 흑인 크리에이터가 멸칭도 아닌 단어를 자기 시리즈 이름으로 선택할 권리를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당사자가 쓴다는 것 자체가 내면화된 차별 증거"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언어 규약이 보편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하는 순환논리다.
당사자가 문제없다고 하면 '내면화 증거'로, 사과하면 '문제였다는 증거'로 읽는 구조에서는 그의 어떤 발화도 반례가 될 수 없다. 흑인 존엄을 옹호한다는 명분이 특정 흑인의 발화 자격을 박탈하는 역설이다.
흑인은 인종 정체성이지 국가 정체성으로 보긴 어렵다. 미국 거주 흑인들이 지닌 역사적 경험을 흑인 전체 경험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영미권 이외 국가에서 흑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을 지우는 결과일 수 있다.
■ 샘 오취리 전례 넘어서려면…'미국 규범 맹종' 아닌 '맥락 번역' 필요할 때
물론 한국 미디어 산업이 다양성에 너그러운 분위기는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80년대 '시커먼스'류 블랙페이스 개그가 있었고, 2020년 의정부고 '관짝소년단' 패러디 논란이 있다.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방송인 샘 오취리는 이후 방송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해외 유저들이 품는 의심에는 이런 축적된 전례가 있다.
소수자가 자신의 소수성을 무해한 웃음으로 바꿔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산업 구조에 대한 비판도 유효하다. 조나단은 흑인 비하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네가’를 재미 요소로 종종 사용해 왔다. 한국인 친구들이 내뱉는 ‘어둡다’, ‘밝다’는 표현을 ‘나를 겨냥한 표현이냐’고 되물으며 리액션 영상을 찍기도 했다.
조나단이 흑인 당사자라는 측면에서 자학적 개그를 제공하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콘텐츠를 웃음으로 소비하는 절대다수가 비흑인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감상을 남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럼에도 단어 하나를 사회 전체의 병리로 직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또한 특정 국가에서 통용되는 문화 규범을 모두에게 들이미는 것이 또다른 권력일 수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한국 지상파 장수 프로그램 클립이, 그것도 자동 번역된 캡처 한 장으로 미국 SNS에서 논쟁이 되는 상황은 K-콘텐츠 파급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영미권은 K-콘텐츠 최대 수요층 중 하나이다. 다양한 문화권을 소비자로 두는 산업이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경청과 이식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주를 이룬다. 특정 국가의 언어 규약을 한국 콘텐츠 윤리 기준으로 세우는 것은, 그 규약이 태어난 맥락을 지우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 콘텐츠 산업에 필요한 것은 규범의 일방적 수입도, 방어적 무시도 아닌 맥락을 번역하는 역량이다. 그 역량이 자랄 때까지, 인종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어온 한 당사자의 노력이 국경 밖 오독으로 위축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잃는 결말일 것이다.
뉴스엔 황지민 saeh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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