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팀을 만난 것일까. 벨린저가 반등하고 있다.
뉴욕 양키스는 5월 22일(한국시간)까지 29승 19패, 승률 0.604를 기록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다. 양키스를 이끄는 것은 마운드보다는 타선. '4할타자' 애런 저지를 필두로 팀 OPS 및 팀 홈런 전체 1위를 달리는 타선이 양키스의 강점이다.
그런 가운데 초반 부진을 딛고 최근 맹렬하게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선수가 있다. 바로 주전 외야수인 코디 벨린저다. 벨린저는 22일까지 44경기에서 .264/.333/.472 8홈런 29타점을 기록했다.
벨린저는 지난 12월 트레이드로 시카고 컵스를 떠나 양키스에 입단했다. 컵스는 3년 6,000만 달러 계약의 마지막 시즌을 앞둔 벨린저를 투수 코디 포팃 한 명만 받고 연봉 보조까지 해서 양키스로 보냈다. 지난해 130경기에서 .266/.325/.426 18홈런 78타점을 기록한 벨린저가 성적이 더 나빠질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컵스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는 선택이었다. LA 다저스에서 신인왕, MVP를 모두 수상했던 벨린저지만 2020년 어깨 부상을 당한 뒤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2017년 데뷔해 2019년까지 첫 3시즌 동안 450경기에서 .278/.368/.559 111홈런 288타점 39도루를 기록한 벨린저는 2020-2022시즌 3년간은 295경기에서 .203/.272/.376 41홈런 134타점 23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2022시즌 종료 후 다저스에서 충격의 논텐더 방출을 당했다.
벨린저는 컵스 입단 첫 해인 2023년 130경기에서 .307/.356/.525 26홈런 97타점 20도루로 맹활약했지만 데뷔 첫 3년의 파괴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타구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고 3년간 111홈런을 쏘아올렸던 장타자의 모습은 사실상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2024시즌에는 성적이 더 떨어졌다. 컵스는 벨린저를 '처분 대상'으로 분류했고 후안 소토(NYM)가 떠나며 외야수가 필요해진 양키스에 벨린저를 '헐값'에 처분했다.
새로 양키스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벨린저는 4월 한 달 동안 25경기에서 .182/.270/.318 2홈런 10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5월에는 16경기에서 .354/.417/.646 5홈런 13타점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5월 첫 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던 벨린저는 이후 15경기에서 모두 안타를 신고하며 최근 15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했다. 해당 15경기에서 타율을 약 7푼 정도 끌어올린 벨린저다. 어마어마한 상승세다.
벨린저의 맹타에는 '장소'도 한 몫을 했다. 연속안타 기간 원정에서 5경기, 홈에서 10경기를 치렀다. 원정 5경기에서도 안타 7개(2루타 2개, 타율 0.304)를 기록하며 좋은 타격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특히 홈 성적이 굉장했다. 벨린저는 홈 10경기에서 16안타(2루타 2개, 홈런 5개, 타율 0.381)를 몰아쳤다.
홈플레이트에서 우중간 담장까지의 거리가 좌중간보다 약 5m가 짧은 양키스타디움은 좌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다. 중앙 펜스부터 우측 파울 폴까지 가파른 직선 형태로 만들어진 양키스타디움은 우측 담장이 좌측에 비해 월등히 가까워 좌타자의 홈런 생산이 훨씬 쉽다.
좌타자인 벨린저는 올시즌 홈구장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올시즌 벨린저는 홈 26경기에서 .290/.352/.559 6홈런 22타점을 몰아친 반면 원정 18경기에서는 .229/.308/.357 2홈런 7타점에 그쳤다. 리그 평균보다 더 타구를 잡아당기는 타자이자 발사 각도가 높은 타자인 벨린저 입장에서 좌타자에게 유리한 양키스타디움은 장타를 생산하기에 최적화 된 장소다.
사실 벨린저는 커리어 내내 딱히 '홈에서 강한 타자'는 아니었다. 홈구장 성적이 원정 성적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던 시즌은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해인 2022시즌 정도 밖에 없었다. 실제로 통산 홈 성적(.257/.334/.495 106HR 318RBI)과 원정 성적(.260/.334/.471 97HR 307RBI)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투수 친화적인 구장인 다저스타디움을 오래 홈구장으로 사용한 탓도 있지만 컵스에서 바람이 많이 불고 좌우중간 펜스가 짧아 타자 친화적 구장으로 잘 알려진 리글리 필드를 홈으로 사용하면서도 홈 성적이 딱히 월등히 좋지 않았던 벨린저다.
하지만 양키스에서는 다르다. 올시즌 홈런의 평균 비거리가 399피트로 아주 긴 편이 아니고 홈런 8개 중 절반인 4개의 비거리가 390피트 미만이었으며 심지어 비거리 356피트짜리 만루 홈런도 친 벨린저에게 우중간 펜스가 짧고 좌타자가 장타를 치기 좋은 양키스타디움은 그야말로 최적화 된 구장인 셈이다.
물론 벨린저의 성과가 전적으로 홈구장 덕분이라 말할 수는 없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벨린저는 일부 지표에서는 데뷔 첫 3시즌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벨린저는 데뷔 첫 3년간 평균 타구속도가 시속 90마일을 훌쩍 넘는 타자였다. 신인왕을 수상한 2017년과 MVP를 거머쥔 2019년에는 강타 비율도 45% 이상이었다. 평균 17도 이상의 높은 발사각도로 강하고 빠른 타구를 계속 날리는 타자였고 기대 장타율도 0.500을 훌쩍 넘었다. MVP 시즌에는 기대 장타율이 0.635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컵스에서 보낸 2년은 평균 타구속도가 시속 88마일 미만에 그쳤다. 강타비율도 31-32% 수준으로 뚝 떨어져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발사각도는 높았지만 강한 타구를 띄워보내는 것이 아닌 만큼 장타는 당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올해는 다시 달라졌다. 벨린저의 올시즌 평균 타구속도는 시속 89.7마일. 강타비율은 41.4%다. 타구속도는 MVP 시즌 이후 가장 빠르고 강타비율도 어깨 부상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배럴타구 비율(10.9%)도 2017년(12.2%), 2019년(12.7%)에 이어 통산 세 번째로 10%를 넘어섰다. 타구의 질이 점차 어깨 부상 이전과 근접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다. 패스트볼 계열 공에 대한 대처 능력은 부상 이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지만 오프스피드 피치에 대한 대처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상 전 벨린저는 체인지업, 스플리터 등 오프스피드 피치를 공략하는 능력이 뛰어난 타자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벨린저가 다시 'MVP급' 타자로 올라설 수 있느냐는 오프스피드 공략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을 수도 있다.
리그를 지배하던 당시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달라진 시즌을 보내는 것은 분명하다. 홈구장과의 '궁합'도 아주 좋다. 한 때 가장 빛나는 타자였지만 부상과 함께 추락했던 벨린저가 양키스에서 다시 정상의 자리를 바라보는 타자로 복귀할 수 있을지 남은 시즌이 주목된다.(자료사진=코디 벨린저)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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