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뢰 배트'가 2025시즌 초반 메이저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뉴욕 양키스는 시즌 개막 첫 4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새 역사를 썼다. 4경기에서 홈런 18개를 몰아쳤고 역대 첫 4경기 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썼다. 지난 200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세운 16개를 넘어선 양키스다.
양키스의 홈런 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선수가 아닌 '배트'였다. 여러 양키스 타자들이 사용한 특이한 모양의 배트가 눈에 띈 것. 배트 중심부터 헤드 끝까지 동일한 두께인 기존의 배트와 달리 배트의 헤드 부분이 중심보다 얇은 형태의 배트로 '어뢰(Torpedo) 배트'라 불리는 것이다.
어뢰 배트는 과학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어뢰 배트를 고안한 사람은 마이애미 말린스의 필드 코디네이터인 애런 린하르트. 린하르트는 미시간 주립대에서 전기공학 학사, MIT(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물리학 전문가다. 린하르트는 야구계에 몸담기 전 미시간 주립대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한 인물이다.
MLB.com에 따르면 린하르트는 양키스에서 마이너리그 타격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당시 타자들의 타격을 지켜보며 대부분의 선수들이 타격할 때 배트의 가장 두꺼운 부분(헤드 끝부분)이 아닌 손잡이에 더 가까운 부분으로 주로 공을 친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끝부분의 두께를 줄이고 스윗스팟 부분을 더 두껍게 만드는 배트를 만들었다. 배트의 더 두꺼운 부분으로 치면 결과가 더 좋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만들어진 배트인 것이다.
'어뢰 배트'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주로 타격하는 부분의 면적을 넓혀 더 공을 잘 맞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배트의 무게 중심을 손에서 더 가까운 쪽으로 당겨 더 빠르게 배트를 휘두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무게 중심이 손에서 더 가까울수록 배트를 더 적은 힘으로 빠르게 휘두를 수 있다.
다양한 선수들이 어뢰 배트를 쓰고 있다. 양키스에서는 볼피와 웰스, 치즘, 벨린저, 폴 골드슈미트 등 5명이 어뢰 배트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들리 러치맨(BAL), 니코 호너와 댄스비 스완슨(이상 CHC), 엘리 데 라 크루즈와 호세 트리비노(이상 CIN), 카를로스 코레아와 라이언 제퍼스(이상 MIN), 프란시스코 린도어(NYM), 알렉 봄(PHI), 오닐 크루즈(PIT), 주니오르 카미네로와 얀디 디아즈(이상 TB), 데이비스 슈나이더(TOR) 등도 어뢰 배트 사용자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배트스피드 상승 효과는 나타나는 듯하다. 어뢰 배트로 가장 주목받는 타자 중 하나인 볼피는 지난해 평균 배트스피드가 시속 69.3마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시속 71.2마일로 빨라졌다. 웰스 역시 지난해 시속 72.4마일이던 평균 배트스피드가 올해 73.7마일로 올랐다. 배트스피드가 평균 시속 69마일로 아주 느린 타자였던 벨린저 역시 올해는 시속 71.4마일을 기록 중이다.
코레아(74.5마일→75.1마일), 러치맨(69.1마일→70.0마일), 데 라 크루즈(75.2마일→75.8마일), 봄(72.2마일→73.8마일), 디아즈(73.3마일→74.1마일) 등은 물론 원래 리그 최상위권 배트스피드를 가진 타자였던 크루즈(78.6마일→79.5마일)도 배트스피드가 빨라졌다. 물론 시즌 초반인 만큼 선수들의 체력이 충분하고 표본이 작아 평균 배트스피드가 빠르게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어뢰 배트를 사용하는 선수들의 올시즌 배트스피드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모든 선수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골드슈미트, 스완슨 등은 지난해와 배트스피드가 달라지지 않았고 호너, 린도어는 오히려 느려졌다. 선수마다 영향은 다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성적도 선수마다 다르다. 양키스 선수들의 초반 임팩트가 워낙 대단했기에 '어뢰 배트 = 타격 성적 향상'의 공식이 성립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어뢰 배트를 사용한 선수가 모두 초반 맹활약 중인 것은 아니다. 양키스 선수들과 데 라 크루즈, 스완슨, 호너 등 시즌 초반 맹타를 휘두르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어뢰 배트와 함께 최악의 시즌 초반을 보내는 선수들도 있다.
코레아는 개막 첫 5경기를 무안타로 마친 뒤 4월 3일(한국시간) 간신히 시즌 첫 안타를 신고했고 디아즈, 린도어 등도 최악의 모습으로 시즌을 출발하고 있다. 제퍼스, 트리비노, 슈나이더 등은 전혀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어뢰 배트가 만능은 아니다. 미국 과학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어뢰 배트의 핵심은 중심의 이동이다. 회전하는 물체는 무게의 중심이 손에서 가까울수록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강해진다. 어뢰 배트도 무게를 손 쪽으로 옮겨 더 가볍게 휘두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스윙이 빨라지면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다. 또 배트 중앙을 넓혀 타격 면적이 넓어지면 강한 타격을 할 기회도 늘어난다"면서도 "하지만 선수들이 스윙하는 힘을 공에 더 효과적으로 실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배트 끝부분이 기존 배트보다 가벼워진 만큼 힘은 덜 실리게 된다"고 분석했다.
어뢰 배트 없이도 파괴력을 보이는 선수들도 많다. 지난해 양대리그 MVP였던 저지와 오타니 쇼헤이(LAD)는 어뢰 배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홈런 1위 에우제니오 수아레즈(ARI)를 비롯해 4할 타율을 기록 중인 윌 스미스(LAD), 타일러 오닐(BAL),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SD), 잭슨 메릴(SD) 등도 어뢰 배트 사용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
일각에서는 어뢰 배트가 플라시보 효과와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어뢰 배트의 효과를 추론해낼 수는 있지만 실제 배트와 성적의 확실한 상관관계가 증명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뢰 배트와 함께 성과를 내고 있는 선수들이 있는 만큼 2023년 WBC 이후 마치 '궁극의 필살기'처럼 떠올랐던 스위퍼처럼 유행이 될 수도 있다.
심각한 타격 부진으로 개막 7연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구단 차원에서 어뢰 배트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과연 시즌 초반을 달구는 어뢰 배트 신드롬이 올시즌과 향후 메이저리그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자료사진=위부터 재즈 치즘 주니어의 어뢰 배트, 어뢰 배트로 타격하는 앤서니 볼피)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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