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가 또 한 번 '갑질'에 나선 모양새다.
오타니 쇼헤이는 이번 오프시즌 가장 뜨거운 선수다. 의심이 여지가 없는 올겨울 FA 시장 최대어인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쓸만한 초대형 규모의 계약을 맺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어쩌면 'FA 시장 역사상 최대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어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차갑기 그지없다. 오타니 측에서 내렸다는 '함구령' 때문이다. 디 애슬레틱 등 현지 언론들은 오타니와 그의 에이전트인 네즈 발레로가 오타니의 오프시즌 행보에 대해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FA 시장은 원래 순차적으로 움직이게 돼 있다. 최대어가 행선지를 결정해야 그를 최우선 목표로 삼던 다른 팀들이 '플랜 B'를 향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타니가 행선지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시장이 경직될 수 밖에 없는 것. 그런 오타니가 모든 행보와 정보를 감춘 탓에 올겨울 FA 시장은 이미 윈터미팅에서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다. 후안 소토의 트레이드 루머를 제외하면 굵직한 소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타니의 유력 행선지로 손꼽히는 LA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6일 다저스가 오타니와 만남을 가졌다고 입을 열었다. 오타니의 행보에 대해 올겨울 처음으로 '공식적인' 발언이 나온 것. 하지만 이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로버츠 감독의 발언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오타니와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고 더 친밀해졌으며 오타니와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 발언에 오타니를 둘러싼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함구령'을 어긴 다저스가 오타니의 눈밖에 났고 영입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에 따르면 다저스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은 로버츠 감독이 오타니와 만났다는 것을 밝힌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고 반응했다. 프리드먼 사장은 '로버츠 감독의 발언 탓에 오타니 영입 기회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지금은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넘겼다. 토론토 로스 앳킨스 단장은 "오타니와의 만남은 있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다"는 말장난 같은 대답을 취재진에게 늘어놓았다.
당연히 불만은 터져나오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오타니의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디 애슬레틱의 저명 칼럼니스트 켄 로젠탈은 "떠들썩하고 즐거워야 할 윈터미팅이 오타니 때문에 조용하다"고 비판했다. 특급 FA 선수가 어느 팀을 만나러 어디로 향했다는 기사가 쏟아지며, 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선수의 행선지를 예측하는 낙으로 보내는 겨울이라는 뜻으로 '스토브리그'라는 이명까지 있는 오프시즌의 재미가 오타니의 함구령 때문에 사라졌다는 비판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첼시 제인스는 "만약 오타니가 다저스와 계약하지 않고 그것이 로버츠 감독의 발언 때문이라면, 우리는 이 일 하나로 오타니에 대해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해온 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논의의 세부 내용을 외부로 흘린 것도 아니고 '만났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오타니 측이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조차 할 수 없도록 구단들을 압박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FA 시장에서 '슈퍼 갑'의 위치에 서있는 오타니 측이 대단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X(트위터)에서는 "로버츠 감독이 '실언했다. 나는 오타니를 만난적이 없다. 오타니가 누군지도 모른다.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고 정정했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오타니의 이런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오타니는 2018시즌에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빈축을 샀다. 당시 규정상 '아마추어 계약'만 가능했던 오타니는 최고의 재능을 가졌지만 신인 선수와 마찬가지인 소규모 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어 모든 구단들이 영입전에 달려들었다.
당시 오타니는 에이전트 발레로와 함께 메이저리그 구단들에게 자신이 머무는 곳으로 찾아와 자신이 제시한 양식에 맞춘 프레젠테이션을 할 것을 요구했다. 다저스는 오타니의 마음을 얻기 위해 클레이튼 커쇼를 포함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스타들을 대동하고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제는 하나의 '해프닝'처럼 여겨지는 일이지만 오타니의 당시 행보도 당연히 적지 않은 반발을 샀다. 커쇼와 저스틴 터너는 오타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원된 당시 일에 대해 '시간 낭비였다'고 불쾌함을 표했다.
에인절스 입단 후 첫 3년을 큰 성과 없이 보낸 오타니는 2021시즌 MVP를 수상하며 팀 내에서 입지가 크게 높아졌다. 오타니가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는 사이 팀을 지탱한 선수들은 오타니가 비상한 뒤에는 부상과 부진을 겪으며 엇박자가 났다. 그러자 오타니는 팀 전력과 팀 성적에 대한 비난을 공공연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자신이 팀성적 부진의 한 원인일 때는 조용했지만 성적이 오르고 입지가 탄탄해지니 구단과 동료들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소속팀 에인절스를 공공연히 비난한 오타니는 에인절스와 연장계약을 맺지 않고 FA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최종 행선지가 에인절스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오타니의 '잔류'를 예상하는 측에서는 오타니가 '더 편한 환경'을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2024시즌 지명타자 출전과 팔꿈치 부상 재활을 병행해야 하는 오타니 입장에서 선수의 몸상태를 잘 알고 더 편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에인절스 쪽으로 마음이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예상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오타니가 '알아서 자신에게 다 맞춰줄' 에인절스에 남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에인절스는 오타니가 FA 시장으로 향하기 전부터 오타니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무리한 선수 영입까지도 불사했다. 그만큼 에인절스는 오타니의 '말을 잘 듣는 구단'이고 오타니와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하나하나 새로 말하지 않아도 뭘 해야 오타니가 좋아하는지 아는 구단'이기도 하다. 이런 점이 에인절스의 '어필 포인트'인 셈이다.
최고의 선수고 야구의 패러다임을 새로 쓴 역사적인 선수인 것도 맞다. 엄청난 '자기관리'의 화신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은 선수기도 하다. 하지만 계약 등의 과정에서 계속 '갑질'로 비춰질 모습이 나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에이전트인 발레로의 실책일 수도 있지만 결국 에이전트는 오타니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오타니의 의사와 무관할 수 없고 특히 '로버츠 감독의 발언 때문에 다저스로는 가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는 오타니와 무관하게 퍼질 수 없다. 함구령은 좋은 계약을 따내기 위한 협상 전략보다는 '내 말을 잘 듣는지 지켜보겠다'는 것에 가까워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무엇보다 먼저인 것 같았던 오타니지만 사실은 '내 말을 잘 듣는 구단'이 최우선인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6년 전에도 계약 과정에서 '갑질' 논란이 불거진 오타니는 다시 나온 계약 시장에서 또 비슷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과연 오타니의 행선지가 어디로 정해질지, 오타니의 행선지가 확정된 뒤 오타니의 선택을 받지 못한 구단들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자료사진=오타니 쇼헤이)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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