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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시신없는 살인사건과 동거남, 명품가방 미스터리(종합)
2019-03-17 00:16:26


[뉴스엔 이민지 기자]

시신없는 살인사건은 가족들에게 상처만 남겼다.

3월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난 2005년 1월 있었던 당시 23세 정나리 씨 실종사건에 대해 파헤쳤다.

23세 정나리 씨. 가족들은 그녀를 꿈에서만 만날 수 있다. 14년 전 일어난 기묘한 사건 때문이다.
2005년 1월 23일 새벽 4시, 이웃에 살던 박모씨에게 길가에 세워진 차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정나리 씨가 목격됐다. 집 밖에서 한참을 울던 나리씨는 4시30분께 지인의 부축을 받고 원룸으로 들어갔다. 정나리 씨 언니는 "일을 마치고 세명이 같이 술을 먹다가 나리가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계속 했다더라. 차에서 안 내린다고 하고 울어서 집까지 데려다줬다고 하더라"고 지인의 말을 전했다. 나리씨가 살던 원룸에는 2주 전부터 나리씨와 동거를 하고 있던 김모씨가 자고 있었다. 10여분 뒤 앞집에 살던 박씨에게 여인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고 한다. 남녀가 싸우는 것 같은 소리를 들은 것은 박씨 뿐이 아니었다. 이런 소리는 2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담당 형사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아무도 112 신고를 안 했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웃들이 들은 다툼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날 이후 정나리씨는 아르바이트 하던 가게도 나가지 않았고 며칠 후 찾아간 지인이 이웃들로부터 그날의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리씨와 동거남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리씨가 사라진지 5일째 되던날 가족들의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 사건을 '시신없는 살인사건'으로 봤다. 담당 형사는 "생활 반응 자체가 없다.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자살하면 시체가 나타나지 않나"고 말했다. 원룸에 들어간 것은 확실하지만 원룸에서 나온 것은 누구에도 목격되지 않았다.

경찰은 동거남 김씨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했다. 형사는 "이 사건을 처음에 쉽게 봤다. 용의자가 전과가 없다. 우발적인 사건일 수 있겠다. 데려오면 자백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거남 김씨의 주장은 경찰의 예상을 빗나갔다. 경찰은 "(정나리 씨를) 못봤다고 하더라. 자기는 11시까지 술에 취해 잤다고 했다.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하고 보지도 못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2시간 동안 계속된 욕설과 폭행, 다툼소리를 들었다는 이웃들과 동거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만 잤다는 김씨.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1심에서 김씨는 징역 7년형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이웃들이 들은 소리가 나리씨의 집에서 들려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김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김씨가 무죄라는 재판부와 사건이 종결됐다는 경찰. 재수사를 하려면 정나리씨의 시신이라도 해야하지만 이는 가족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14년 전, 당시에는 원룸 건물 어디에도 CCTV가 없었고 차량 블랙박스처럼 입주민들의 동선을 찾는 것도 한계가 있던 시절이다. 정나리 씨가 귀가했을 때 집에 있던 사람은 김씨 뿐이었다. 울고 있던 정나리 씨와 자고 있던 동거남 김씨. 이후 상황에 대한 이웃주민들의 진술은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에서 귀로만 들은 것이다. 이웃들은 뺨을 때리는 소리,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김씨는 주변 이웃이 잠에서 깰만큼 큰소리를 낸 정나리 씨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처음 원룸에 간 것은 5일 뒤였다. 당시 담당 형사는 "잘 정돈돼 있었다"고 말했다. 욕실 역시 동거하는 남녀가 같이 사는 곳이라기에는 세면대, 변기, 하수구 모두 깔끔했다. 이상한 것은 안방 장롱에서 발견된 이불이었다. 형사는 "세탁하고 말리면 뽀송해야 하는데 눅눅했다. 세탁을 한 이불은 분명한데 꿉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가출 사건이 있어서 집에 가면 집안에 정리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욕실 배수구 뚜껑에서는 집주인 정나리 씨가 아닌 피고인의 유전자만 발견됐다. 김씨는 욕실의 구토 흔적을 청소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김씨의 신발 바닥에서 나리씨와 김씨의 혼합 혈흔이 발견됐다.

1심 재판부는 방안의 혈흔은 살해 증거, 신발 바닥 혈흔은 사체 유기의 증거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방안의 혈흔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기엔 소량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김씨. 수사에 따르면 김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새벽 2시께 나리씨에게 두차례 전화를 했다. 통화 후 몹시 화가 난듯 보였다고 한다.

김씨는 그 다음날 오전 11시 일어나 오후 4시에 원룸을 떠났고 그날 오후 6시 친구들을 만나 팔공산으로 드라이브로 갔다고 진술했다. 담당 형사는 "친구한테 뜬금없이 팔공산에 가자는건 수사진에서는 알리바이를 맞추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팔공산에 같이 갔던 친구 이씨는 전날 밤 나리씨 때문에 화를 냈던 김씨가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는데도 드라이브를 하자고 한 것이 평소와 달랐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새벽에 6시쯤인가 드라이브 가자고 전화가 왔다. 미친거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팔공산에 갔다. 경찰에 다 얘기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오전 11시까지 잠을 자고 오후 3시에 친구를 불렀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과 맞지 않는 부분이다. 또 새벽에 걸려온 전화번호는 평소 김씨가 쓰던 번호와 달랐다고 한다. 경찰이 확보한 이씨의 통화 기록에는 김씨의 전화가 기록돼 있지 않았다. 통신 기록에는 발신만 남기 때문에, 수사 기관은 이씨가 받았다는 낯선 내역의 통화 기록을 확보하지 못했다.

김씨는 또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앞두고 돌연 중국으로 출국했다. 5년후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사기관에 자진출두했다. 형사는 "5년간 돈도 모으고 준비를 한 것 같더라. 당당히 재판에 임하더라"고 말했다. 1심 재판부는 중국 출국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김씨의 행동이 수상해도 나리씨의 사망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웃들이 들었다는 새벽에 들었다는 다툼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2심 재판부는 현장검증도 진행했다. 당시 현장검증에 갔던 형사는 "판사님들도 소리가 잘 들었다고는 하는데 201호이냐는 확신을 못한거 같다"고 말했다. 2010년 재수사 담당 형사는 "정나리가 들어간건 맞다. 들어간 뒤에 10여분 후 싸우는 소리가 들었다. 방문을 열고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 채택을 안하면 범인을 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심에서 무죄가 난 결정적 이유로 '피해자의 사체를 못 찾은 것'이 가장 크고 김씨의 자백을 받지 못한 것을 두번째 이유로 꼽았다.

김씨는 정나리 씨를 찾고 싶다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나도 걔 때문에 힘든 일 겪었다. 내가 재판부 판결도 다 받고 법원가서 다 해결했다. 나와 상관없는데 왜 나한테 물어보냐"며 전화를 끊었다. 김씨를 전화를 걸어온 번호는 대구 시내의 공중전화였다.

어렵게 만난 김씨는 "진짜 욕 나오는데 그 여자 때문에.. 그 여자 찾으면 연락을 달라. 내가 얼굴 보고 욕 좀 하게. 어릴 때 한두달 그 정도 만났다. 그것 때문에 엮여서 경찰이 하도 오라 그러니까 아버님이 그냥 중국 가서 일이나 배우라고 해서 간거다. 나도 가정을 꾸리고 애가 둘이다. 찾든 말든 나와 상관 없다"고 말했다.

법원이 동거남 김씨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한 이유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피해자가 원룸에 들어와다 다시 나가서 피고인과 함께 있지 않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딸의 실종 소식을 들은 후 원룸으로 달려갔다는 어머니에게 청소가 된 듯한 집안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방문 유리에서는 뭔가 닦아낸 흔적,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서는 표백제, 장롱 안 축축한 이불은 어머니의 마음에 오랜 시간 남아있다. 경찰은 혈흔이 발견된 곳이 안방 이불과 안방, 유리문 뿐이라고 했지만 덜 마른 이불이 왜 장롱 안에 들어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미세한 범죄의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아직도 그 이불을 가지고 있었다. 제작진은 혈흔 반응 검사를 실시했다. 루미놀 검사를 실시했지만 혈흔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원룸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지 않은 증거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본 전문가는 혈흔에만 집중해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또 원룸에서 혼자 나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원룸 안에 살인 뿐 아니라 시신 훼손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원룸 안에서 시신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170cm의 나리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 그러나 김씨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나리씨는 욕실에 구토 흔적을 남겼을 만큼 만취한 상태였다. 김씨는 새벽 3시반에서 5시 사이에 나리씨로부터 부재중 전화 8통이 전화왔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일뿐 확인은 되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는 발신자와 수신자 모두의 통화기록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리씨의 통신기록에 따르면 나리씨가 동거남 김씨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통화를 한 것이 지인 신씨였다. 동업 형식으로 작은 카페를 운영했다는 그녀는 나리씨와 가까운 사이였다.

2004년 12월 29일과 2005년 1월 7일 서너통씩 전화와 문자를 한 사람이 있다. 나리씨의 전 남자친구였다. 4~5년 정도 교제했고 결혼 이야기도 있었던 사이다. 가족들은 나리씨가 실종된 후에야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김씨와 동거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나리씨 지인은 "김씨를 만나면서 XXX와 헤어졌던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가 아니고 사귀고 있던 중에. 김씨는 자기는 자고 있었고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모르겠다 하지 않냐. 나갔다면 XXX한테 전화하고 나갔을거라고 전화번호를 추적하자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종 당일 나리씨가 전 남자친구에게 전화한 기록은 없었다.


나리씨가 사리지기 전날 나리씨의 통화기록에서 특별한 것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나리씨는 원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진관에서 40여초간 통화를 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은 가족이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정나리 관련 제보를 받기 시작한 후 제보 전화가 왔다. 제보자는 "내가 2005년도쯤에 루이뷔통 가방을 주웠다. 봉덕동 원룸 입구에서 주웠다"고 말했다.

제작진을 만난 제보자는 "가방이 너무 새것이었고 사용 흔적은 있지만. 횡재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내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이 확실하다. 내가 그 집에 2004년 여름부터 살았다. 추울 때였다. 어묵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새벽 6시가 다 돼 집으로 돌아오던 제보자는 본인이 살던 원룸 현관 앞에 놓인 가방을 발견했다고 한다. 제보자가 2005년 루이뷔통 가방을 주웠다는 장소는 나리씨 원룸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곳이었다. 가방 주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제보자는 "화장품만 있었다. 신분을 확인할만한 게 없었다. 잡동사니가 있었던 건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가짜를 쓰다가 버렸나보다 하고 들고 들어갔다. 가방이 깨끗했다"고 말했다. 제보자가 가지고 있는 루이뷔통 가방은 나리씨의 것과 같은 것일까. 나리씨가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따로 살았기 때문에 가족들도 그 가방을 본 적이 없다. 가방을 유심히 살펴본 전문가는 제보자가 주운 가방이 진품이라며 "출시되자마자 판매가 거의 다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젊은 층에게 더 많이 판매됐던 제품이다. 한정품으로 나와 고가이고 진품이라 싫증났다고 버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방이 이 여성의 것이 확실하다면 사망하고 시신이 유기되는 과정에서 버려졌을 수도 있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유전자가 나온다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피해자에게 우리가 할 일은 없으니 당신이 수사의 단서를 새롭게 만들어 수사를 요청하라 하는건 국가가 스스로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창원 의원 역시 "성인 실종 중 범죄 연루 가능성이 있는 실종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담당자를 정하고 추적해서 그 기소 결과는 무엇인지 이 피해자에 대해서는 시신이 확인됐는지 이 부분이 확인되지 전까지는 종결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제보자가 보내온 루이뷔통 가방을 단서로 정나리 씨 사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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