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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떠나는 ‘전설’ 벨트란, 그를 바꾼 한 마디
2017-11-15 06:00:01


[뉴스엔 안형준 기자]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생애 최고의 조언을 해준 사람은 야구선수가 아닌 골프선수였다. 그는 바로 푸에르토리코의 골프 전설, 치치 로드리게스였다. 나는 내가 신인왕을 수상했던 1999년을 기억한다."

또 한 명의 '전설'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위치히터 중 한 명인 카를로스 벨트란은 11월 14일(한국시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1998년 빅리그에 데뷔한 푸에르토리코 출신 벨트란은 20번째 시즌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 반지를 손에 넣었고 정상의 자리에서 커리어를 마치는 것을 선택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벨트란은 이날 '데릭 지터가 만든 소통의 창구' 플레이어즈 트리뷴을 통해 그라운드와의 작별을 고했다.

한결같았던 20년
▲ 한결같았던 20년
‘벨트란의 글러브, 여기에 잠들다’(feat. 브라이언 맥캔)
▲ ‘벨트란의 글러브, 여기에 잠들다’(feat. 브라이언 맥캔)
벨트란의 모든 것을 바꾼 치치 로드리게스
▲ 벨트란의 모든 것을 바꾼 치치 로드리게스
"로드리게스는 내게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성공하고 싶다. 야구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로드리게스는 '오, 정말 간단하네'라고 대답했다. 간단하다니, 농담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되물었다. '간단하다면 왜 더 많은 선수들이 성공하지 못하느냐'고. 그러자 로드리게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라. 그리고 존경하는 그들에게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벨트란은 "이 한 마디가 내 모든 것을 바꿨다"며 "야구선수들은 긴 시즌을 치른다. 잦은 이동을 하고 긴 이동시간 동안은 한가하기도 하다. 선수들은 홀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수줍음 때문에 홀로 있기도 한다. 로드리게스와 대화 이후 나는 더이상 혼자 있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적었다.

2007년 올스타전은 벨트란의 변화가 잘 나타난 사례였다. 당시 뉴욕 메츠 소속이던 벨트란은 올스타전이 열리는 AT&T 파크의 클럽하우스에서 '거물'을 마주했다. 현역 마지막 시즌, 마지막 올스타전에 나서는 배리 본즈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라커 1개를 쓰지만 몇몇 선수들은 2개씩을 사용했다. 하지만 본즈는 무려 5개의 라커를 사용했다. 본즈 전용의 TV도 있었고 안마의자처럼 생긴 안락의자까지 있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가 '배리 본즈기 때문에' 겁을 먹고 다가가지 못했다. 클럽하우스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그에게서는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가 풍겼다". 벨트란은 당시의 본즈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의 가르침을 되새긴 벨트란은 용기를 냈다. "나는 '배리 본즈의 구역'으로 걸어갔고 등 뒤에서 본즈를 툭툭 쳐 불렀다. 그러자 본즈는 뒤를 돌아보며 '오 카를로스, 잘 지냈지?'라고 말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가 내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다. 나는 본즈에게 '언제 한 번 타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본즈는 잠시 생각한 뒤 '좋아, 가자고'라며 나를 클럽하우스 밖 배팅 케이지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타격 개인 교습을 받았다. 내가 '단지 물어봤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말 한 마디로 천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귀중한 경험을 한 것이다.

벨트란은 커리어 내내 로드리게스의 가르침에 따라 수많은 스타들에게 물었다. "내게 해줄 조언이 없느냐"고, "내가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느냐"고. 버니 윌리엄스, 제프 배그웰, 크렉 비지오, 카를로스 델가도, 이반 로드리게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 등 당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모두 벨트란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은퇴한 전설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나이를 먹어갔고 젊은 선수들이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는 그런 위치가 됐다. 그러자 깨닫는 것이 있었다. 단지 홈런을 치거나 우승을 하는 것이 내가 야구에서 해야할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내게 그랬듯 내가 아는 것들을 젊은 선수들과 공유하고 그들에게 전해줘야 했다.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젊은 팀 휴스턴을 창단 55년만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숨은 조력자' 벨트란은 그렇게 탄생했다.

벨트란의 인생을 바꾼 이는 로드리게스 외에도 또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벨트란은 어려서부터 대부분의 푸에르토리코 소년들처럼 아버지, 삼촌, 형제들과 같이 야구를 했다. 하지만 낮에는 야구, 밤에는 배구를 할 정도로 배구도 좋아했던 벨트란은 고등학교 진학 후 배구에 더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벨트란은 배구에도 소질이 있었다.

벨트란을 배구선수가 아닌 야구선수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질문이었다. "아마추어 야구선수기도 했던 아버지는 어느날 나를 앉혀놓고 이렇게 물었다. '미국에서 뛰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프로 배구선수가 몇이나 되느냐'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푸에르토리코를 대표하는 빅리거는 얼마나 되느냐'고. 정말 많았다.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야구선수가 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프로 선수로서의 비전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다". 벨트란은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이제는 빅리그의 전설이 된 벨트란이지만 20년 전, 처음 빅리그 무대에 오른 순간은 여전히 생생했다.

"더블A에서 시즌을 치른 1998년, 플레이오프에서 팀이 탈락한 날 밤, 나는 라커룸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기 위해 가족들이 와있었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푸에르토리코로 돌아가 윈터리그에 참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감독이 '가지말고 기다려라. 할 말이 있다. 전화 한 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다리기 싫었다. 시간도 늦었고 피곤했다. 가족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전화벨이 울렸고 통화를 마친 감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축하한다, 카를로스. 넌 이제 빅리그로 간다'고". 트리플A를 거치지 않은 '월반'이었다.

"처음 캔자스시티에 합류했을 때, 토니 뮤저 감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받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축하한다. 빅리그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회가 얼마나 올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언제든 필요한 상황에서 나는 준비 돼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확장로스터에 합류한 벨트란은 1998년 9월 15일, 7회 교체출전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7회, 감독은 덕아웃의 내게 '중견수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당시 중견수는 팀의 스타인 조니 데이먼이었다. 감독은 데이먼을 우익수로 보내며 나를 중견수로 투입했다. 트리플A도 거치지 않은 내게 데이먼의 자리를 내준 그 순간, 팀이 나를 믿고있다는 것을 느꼈다". 벨트란은 데뷔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트리플A도 거치지 않은 벨트란은 1999시즌 주전 중견수로 154경기에 출전했고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벨트란은 커리어 동안 캔자스시티, 휴스턴, 뉴욕 메츠,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뉴욕 양키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무려 7개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2004년 캔자스시티에서 휴스턴으로 처음 트레이드된 때가 기억난다. 소식을 들었을 때, 우승권에 있는 팀에서 뛸 수 있다는 흥분과 캔자스시티를 떠나는 아쉬움이 공존했다. 캔자스시티에서 모든 커리어를 보낸 조지 브렛을 동경해왔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20년의 선수생활을 한 후 돌아보니 최고의 팀들에서 뛴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덕분에 수많은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뛰고, 배우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벨트란은 트레이드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가족들의 지원도 든든했다. 2011년 메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하는 데는 아내 제시카의 결단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포스트시즌 경쟁 중이었고 나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를 고민해야 했다. 어려운 고민이었다. 뉴욕은 내가 첫 집을 장만한 곳이었고 딸은 3살, 아내는 임신 8개월이었다. 하지만 의견을 묻기도 전에 이미 짐을 싸고 있던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기고 있고 그들이 당신을 원한다. 오늘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구해야 한다'고". 트레이드가 결정된 선수에게는 보통 새 도시로의 이동을 준비하기 위한 3일의 시간이 주어지지만 벨트란은 아내 덕분에 바로 미국을 횡단할 수 있었다.

19년 동안 7개 구단에서 뛰었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벨트란은 지난겨울, 2004년 잠시 몸을 담았던 휴스턴과 계약했다. 벨트란은 "시즌에 들어서며 휴스턴이 월드시리즈 우승 찬스를 맞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몰랐다. 나는 A.J. 힌치 감독에게 한 가지를 주문했다. '내 라커를 젊은 선수들 옆에 마련해달라'고". 벨트란은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휴스턴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벨트란은 클럽하우스에 두 개의 '챔피언 벨트'를 가져왔다. 하나는 야수, 하나는 투수를 위한 것이었다. 승리한 경기 후에는 선수들이 투표를 통해 야수와 투수 각 1명씩의 MVP를 선정하고 다음 승리 때 전 주인이 새 주인에게 벨트를 물려줬다. 벨트란은 "이 '벨트 수여식'은 점차 춤과 음악이 함께하는 클럽하우스 내 축제가 됐고 선수들에게 '이기는 즐거움'을 만들어줬다. 우리가 101승을 거둔 것은 매일의 승리를 축하한 덕분이다"고 돌아봤다.

"하루는 미닛메이드 파크 클럽하우스를 지나는데, 선수들이 전부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있었다. 브라이언 맥캔은 사제처럼 검정색 망토까지 걸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보였다. 나는 '오후 3시 15분에 중앙 외야에서 카를로스 벨트란의 글러브의 장례식을 거행한다'고 적힌 메모를 발견했다. 내가 한참 동안 수비에 나서지 않고 지명타자로만 출전한 것을 빗댄 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외야에 모였고 맥캔과 조시 레딕은 내 글러브를 묻고 비석까지 세웠다. 2-3일 후, 힌치 감독이 나를 좌익수로 출전시키겠다며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벨트란을 좌익수로 내보내야겠는데 너희들이 글러브를 묻어버려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게도 미리 말해줬어야 했다'고. 그게 7월 중순(7월 18일)이었다. 시즌이 길다고 느껴지고 지치기 시작하는 시기였지만 팀은 여전히 즐거웠다". 휴스턴은 어느새 긴장대신 즐거움이 넘치는 팀이 돼있었다.

커리어 내내 우승을 꿈꾼 벨트란은 휴스턴이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다저스를 꺾으며 그토록 원하던 우승반지를 손에 넣었다. 7차전 승리 후 우승을 자축하는 클럽하우스에서 휴스턴 선수들은 입을 모아 벨트란에게 감사를 전했다. 벨트란 역시 눈물을 흘리며 동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벨트란은 "이제 선수로서의 내 시간은 끝났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한다. 내 인생의 다음 장이 기다려진다"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었다.

"20년 동안이나 야구를 할 수 있었던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훌륭한 팀들에서 뛸 수 있었던 것도 축복이었고 내 경험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팬들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축복이다. 푸에르토리코에 학교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축복이며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받은 것은 선수로서 큰 영광이었다. 그리고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던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야구야, 정말 고맙다"(자료사진=카를로스 벨트란, 휴스턴 애스트로스, 치치 로드리게스
)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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