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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 사람냄새 나는 얼굴의 감독이자 배우(인터뷰) 박양수 기자
박양수 기자 2017-09-16 06:01:01

판타지가 아닌 리얼리티를 장착한 페이스다. 사람 냄새 나는 얼굴의 감독 겸 배우 양익준(42)이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스크린으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어 OCN 범죄스릴러 드라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로 겨울 강풍을 몰고온다.

‘시인의 사랑’ 개봉(14일)을 앞두고 을지로의 한 빈티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공황장애 후유증이 남은 탓인지 예민한 모습이다. 극중 둥글둥글하고 무던한 제주시인 현택훈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다. 영화는 인생의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랑과 마주한 시인(양익준), 억척스럽지만 서글픔을 간직한 아내 강순(전혜진), 질풍노도처럼 다가오는 청년 세윤(정가람)의 감성 드라마다.
양익준
▲ 양익준
양익준
▲ 양익준
양익준
▲ 양익준
양익준
▲ 양익준
- ‘시인의 사랑’을 선택한 이유는?
▲ 지난해 ‘아, 황야’ 촬영차 일본에 체류하고 있을 때 김양희 감독님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았다. 10년 전에 감독님의 단편을 촬영한 적이 있는데 중간에 접었기에 아쉬움이 있었다. 10년 만의 연락이었다.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던 상태라 이후 말하려 했는데 어쩌다가 바로 그날 읽게 됐다. 읽자마자 하겠다고 전화를 드렸다. 감독님이 당황하시더라.(웃음) 배우 입장에서 받아보기 힘든, 귀한 느낌이 들었다. 제주의 일상적 공간과 상황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매력적이었다.

- 체중의 변화가 ‘드라마틱’했다고 들었다.
▲ ‘아, 황야’에선 복싱에 입문하는 캐릭터라 실제 선수처럼 훈련하고 식단조절을 해가며 72kg을 62kg으로 감량했다. 일본영화를 끝나고 1개월 정도 여유가 있어 15kg을 찌우려고 했다. 그런데 보름동안 아무리 먹어도 1kg도 늘질 않더라. 이후 이것저것 먹어가며 70kg 정도까지 몸무게를 늘렸다. 다행히 배가 많이 나오는 스타일인데다 겨울배경이라 옷도 여러 벌 껴입어 넉넉한 몸매가 만들어졌다. 설정 자체가 뚱뚱한 시인이라 원했던 체중은 75~6kg이었다.

-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데 과거 시인에 대한 꿈을 품어본 적이 있나?
▲ 해봤던 것 같다. 소설은 조금 써놓은 게 있다. 이번 작품 때문에 시를 2편 써서 감독님에게 보냈더니 웃으시더라. 복싱 때문에 양팔을 다쳐 팔에 대한, 육체적 고통을 마음의 상태와 연결해 써내려간 시였다.

- 제주의 현택기 시인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진 캐릭터로 들었다. 실존인물이 연기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 제주에 도착한 날 바로 시인을 만났다. 전혀 화를 안내고, 감정표현이 두드러지지 않는 분이었다. 100kg에 육박해 동글동글하고 곰돌이 푸처럼 귀엽게 생기신 분이었다. 그래서 감독님과 택훈은 무조건 귀여워야 한다고 설정을 했다. 제주 거주민인 감독님을 통해 얘기로 듣던 정서와 매우 흡사했다. 시나리오 속 현택훈을 배우 양익준이 표현하는 것이기에 (전)혜진씨나 (정)가람과 감정교환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막는다는 게 어떤 면에선 모순이다. 중간중간 내 감정이 툭툭 튀어나왔다. 반면 현택기 시인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연구를 했던 감독님의 현택훈은 정말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이라, 그런 부분이 초반엔 답답했다.

- 작품 안에서 배우의 자율성 부분과 직결되는 부분인 거 같다. 본인이 감독을 할 땐 어떻게 대처하나?
▲ 감독들마다 성향이 다르다. 순간 튀어나온 감정을 좋아해 오케이 테이크로 쓰는 감독도 있다. 감독님의 뜻은 헤아리나 튀어나오는 감정이 제동 걸릴 땐 답답함을 느끼는 듯하다. 감독할 때 난 아예 배우들을 대동한 리허설을 하지 않는다. 카메라 워크가 복잡하다 싶을 때만 “감정은 1%도 쓰지 말고 걷고 위치만 잡아줘라”라고 요청한다. 캐릭터를 표현해야할 배우가 리허설을 하면서 감정 소모하는 걸 싫어한다. 그 순간 처음 나온 감정 표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리허설을 하면 머리에 입력이 돼버리니까. 그래서 내가 연기할 때 리허설을 힘들어한다. 촬영 전에 겪어버리면 데자뷰 현상이 들고, 예행연습을 하는 느낌이다.

- 하지만 사전 철저한 연습과 약속을 중요시하는 배우들도 있을 텐데.
▲ (웃음) 대부분의 배우들이 바로 슛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똥파리’ 때 (정)만식이 형은 “앤 말을 안 해!”라고 투덜거리셨다. 채무자 역을 맡았던 배우는 찍고 나서 “말을 해줘야할 거 아냐”라며 반 욕을 했다. 3회차가 넘어가고 나면 내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해주더라. 연극,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뭐든지 주체적으로 못하니까, 누가 지시를 해주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거다. 감독의 디렉션이나 주어지는 설정대로 갔던 배우들이 그렇지 않은 환경에 놓이니까 두려웠던 듯하다. 카메라 안 현실에선 그들이 캐릭터들과 함께 사는 거고, 표현해야 하니까 밖에서 개입을 하게 되면 온전한 하나의 세상이 액션과 컷 사이에서 생겨날 수가 없다.

- 아내 역 전혜진과는 첫 공연이었음에도 지지고 볶는 부부의 생활냄새가 물씬 났다.
▲ 궁합을 보면서 친구도 사귀고 공연도 하는데 혜진씨는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다. 그가 있으면 왠지 든든했다. ‘난 배우야’ 하는 명찰 같은 게 느껴지는 배우가 있는데 혜진씨는 자기가 지닌 배우 타이틀에 대해 냄새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되게 편하고 나이도 한 살 차이다. 내가 자신감 넘치는 진취적인 여성을 좋아하는 것도 있다. 혜진씨는 원래 성향이 건강하고 자유분방하다. 동료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꼈다. 아직 미혼이라 부부연기 장면이 신선했고, 꿈을 실현해준 거 같아 매우 재밌었다.

- 시인에게 있어 영감의 뮤즈이자 자극이 되는 청년 역 정가람과의 호흡은 어땠나.
▲ 시인의 입장에선 창작자의 갈증을 해갈하는 대상이 돼야하고, 감정의 자극을 계속 줘야하고, 난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강순(전혜진)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난감했다. 동성과 정서적 교류를 나누고 영감을 얻어야한다는 게...난 기본적으로 남성을 안 좋아한다. 섬세함을 추구하는 욕구 탓에 30대 초반부터 남성친구들이 많이 사라졌다. 여성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폭이 훨씬 더 넓다. 더욱 크게 뻗어나간다. 남자들은 그런 면에서 취약하다. 현재 만나는 친구들 10명 중 9명이 여성들일 정도다.

- '똥파리’에선 마초 이미지가 강했다. 반면 ‘시인의 사랑’에선 찌질한 지식인 캐릭터가 썩 잘 어울린다. 당신의 정체성이 궁금하다.
▲ ‘똥파리’ 땐 내 성향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원래 난 소심하고, 표현을 잘 못하는 친구였다. 지금도 극복하는 와중이다. 학창시절 수업 중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 바지에 볼 일을 봐버려 놀림을 받았을 정도였다. 좋아하는 이성을 향한 고백도 마흔이 넘어 해봤다. 속에선 답답함이 부글부글 끓었고 표현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억눌렀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감독, 주연한 ‘바라만 본다’(2005)에선 사랑, ‘똥파리’(2009)에선 가족에 대한 걸로 힘껏 소리 지르고 싶었던 양익준을 표출했던 듯하다.

- 꽤 오랫 동안 연출은 쉼표 상태다. 연기에만 매진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나?
▲ 두 작품에서 원 없이 세게 표현했더니 더 이상 연출로서 하고 싶은 게 마음 안에선 나오질 않았다. 아이디어는 수두룩하게 메모해 놨는데...목이 쉰다는 느낌이랄까. 소중한 이야기는 익어야 한다. 여물지 않으면 씁쓰레한 맛이 나니까. 30대에 2편으로 토해냈으니 다음 된장이 무르익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하다. 특히 올해 다작하면서 번아웃 상태가 돼버렸다. 앞으로 JTBC 예능 ‘전체관람가’에서 보름 만에 단편영화를 찍어야 하고, 11월엔 어마어마한 속사정을 지닌 캐릭터를 맡은 드라마 ‘나쁜 녀석들’ 촬영에 들어간다.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한해였으나 잘 견디고 있구나 싶어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내년 1월 방영이 끝나면 반년 동안 쉴 수 있다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 영화에서 택훈이 영감의 원천을 찾았듯, 창작자로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 연기는 캐릭터 안에만 푹 빠져 들어가면 된다. 늘 해오는 것처럼 할 수 있는 거니까 해왔다. 연출은 같은 생태계에서 너무 다른 일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선택을 내려야 한다. 내 영감의 뿌리는 가족인 듯하다. 제일 많은 소스를 뽑아오는 건 불안함과 고통으로 채색된 10대다. 그 시절이 빨주노초파남보처럼 가장 많은 요소들을 갖고 있다. 나의 테마는 가족과 사랑, 딱 2개다. 앞으로도 평생 어떤 작품을 하든 이 주제는 다 들어가지 않을까. 그냥 사랑을 한다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결격감을 표현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껏 써온 단편 7편이 다 헤어져 있거나 고백조차 못하는 남자 주인공들이다.

- 그런 면에서 ‘시인의 사랑’의 택훈은 양익준의 두 얼굴이 다 드러난 작품인 것 같다.
▲ 어떻게 보면 택훈은 여태껏 표현해온 것에서 한 단계 넘어가는 역할이다. ‘똥파리’의 용역 깡패 상훈은 느끼기만 하고 표현을 못했다. 하지만 택훈은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바보 같아 보이는 사람이나 용기있는 사람이다.

- 앞으로 계획은?
▲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잘 몰라 더 기대가 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 재밌는 게 아닐까. 내가 다 알아버리면 흥미롭지 않다.

글= 뉴스엔 객원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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