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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 장률 감독 “한예리 춤 연기는 매우 몽환적이다”(인터뷰)
2016-10-24 22:22:26


장률(54)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 ‘춘몽’(10월13일 개봉)이 관객 1만명을 넘어섰다. 의미 있는 스코어다. 이 흑백영화는 허름한 주점을 운영하는 중국동포 출신 예리(한예리)를 사랑하는 건물주 종빈(윤종빈), 보스에게 밉보여 지금은 백수건달로 지내는 익준(양익준), 탈북자 출신 공장 노동자 정범(박정범)의 꿈결 같은 이야기다. 최근 노랗게 물든 담쟁이 넝쿨이 외벽을 둘러싼 연세대 성암관 교수실에서 ‘꿈꾸는 시네아스트’와 마주했다.
장률 감독
▲ 장률 감독
Q. 개봉 후 평단과 관객은 “기존 장률 감독 영화 중 가장 쉽고 재미나다”로 모아진다.
A. 나도 그렇게 찍었는데 받아주시면 고마울 따름이다. 관객이 많이 들어야 할텐데...(웃음)

Q.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낡은 동네 수색 맞은편에는 미래도시를 연상케 하는 초고층 빌딩숲의 상암DMC가 위용을 과시한다. 수색이 흑백이라면, 상암은 컬러로 그 이미지를 뚜렷이 한다. ‘춘몽’에서 공간의 의미는 유달리 커 보인다.

A. 어떤 영화라도 공간이 믿음이 가야 그 영화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 인물들이 진짜 저 공간에서 산다는 질감이 있어야 한다. 공간의 설득력이 없으면 몰입하기가 힘들다. 상암DMC의 외국인 아파트에 몇 년째 거주 중인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아니다. 동네다운 동네를 가봐야 하기에 터널을 지나서 수색에 자주 가곤 했다. 빨리 걸으면 15분이 걸린다. 시장에 들르고, 혼자 밥 먹고 그런다. ‘수색’이란 이름부터가 물의 색깔이다. 물이 무슨 색깔이 있나. 이름과 공간이 딱 맞아 떨어졌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질감은 흑백으로 떠올랐다.

Q. 남녀 주인공들의 모습도 수색과 썩 잘 어울렸다.
A.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감독의 얼굴, 몸동작, 정서가 수색과 맞았다. 그 친구들이 수색 가면 전혀 이질감 없이 동네사람들이라 여길 거다. 한예리는 소박한 면으로 인해 그쪽과 잘 맞는다. 촬영이 모두 끝난 후에도 계속 그 친구들이 그 동네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때문인가 보다.

Q. 경계의 인물들과 그들의 거리감, 간단치않은 삶을 그려오곤 했다. ‘춘몽’에서도 예리, 정범과 같이 남한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경계인이 등장한다.
A. 고의적으로 경계를 찾거나 주제의식을 만들어간 게 아니라 내 삶이 그래왔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왜 밤낮 이런 거만 찍나?’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이래서 그런 거구나’로 받아 들여지더라.

Q. ‘필름시대의 사랑’ '춘몽'에서 연이어 작업한 한예리에 대해 ‘장률 감독의 뮤즈’란 수사가 나오고 있다. 이 배우의 어떤 점이 특별한가.
A. 누구나 머리, 몸, 마음으로 생각하는 게 다 섞여 있는데 이 친구는 감정과 정서를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수라 그런지 몸으로 생각하는 게 익숙하다. 동작, 표정 하나하나가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맑은 물이 흘러가는 듯한 이미지다. 이번에 극중 무용장면을 촬영할 때 “너무 실감나게 추지 말라”고 요구했다. 어떤 정서에 빠지면 자기도 모르는 몸동작이 나오는데 한예리의 춤 장면은 매우 몽환적이었다.

Q. 영화 시작 30분이 됐을 때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와 특이했다.
A. 오프닝 타이틀이 앞에 나오는 건 관습일 뿐이다. ‘춘몽’이라는 타이틀이 뜨기 시작하며 관객은 이 이야기를 꿈과 연관해 볼 거다. 그 전까지는 세 남자가 계속 예리를 쫓아다니고 의지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타이틀이 오르면 그들이 사라지고 거꾸로 예리가 “아저씨” “아저씨” 하며 찾아다닌다. 어떻게 보면 예리가 이 친구들을 갈망하고 의지했던 것일 수도 있다. 관객 각자가 해석하는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효과를 고민했다.

Q. 남자주인공 3인은 배우 이전에 감독이라 ‘춘몽’ 작업을 하는데 장단점이 교차했을 것 같다.
A. 박종범 윤종빈은 부산국제영화제로 인해 알게 됐고, 양익준 감독은 오가며 만나게 돼 친해졌다. 실제 어떤 현장이나 감독과 배우의 관계는 수월하지가 않다. 서로 같거나 다른 생각을 잘 토론해 맞춰가야 한다. 어떻게 같은 질감, 리듬으로 가는가가 중요하다. 각자 내로라하는 감독이지만 배우로 참여했기에 ‘감독과의 소통 과정’을 똑같이 겪었다. 그들의 ‘감독 마인드’로 인해 이번 현장에서 더 어려울 적도, 수월할 적도 있었을 거다. 세 감독이 나중에 “좋은 경험을 했다. 배우의 고충을 잘 알게 돼 앞으로 잘 해줘야겠다”고 하더라. 촬영일수가 17일 밖에 되질 않아 충분히 상의하고 토론할 시간이 적었다는 게 아쉽다.

Q. 당신이 바라보는 '배우'는 어떤가.
A. 배우는 선택받는 존재다. 감독의 지시를 완성해야 하는, 어떻게 말하면 피동적인 존재다. 상처를 받기 쉬운 위치에 있다. ‘춘몽’ 후반부에 영사자료원를 방문한 네 남녀가 영화를 보며 비웃고 떠들다가 쫓겨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들이 보는 영화가 과거 내 작품이다. 그 장면을 찍지 않았더라면 그 친구들의 분노를 어떻게 해소했겠나.(웃음) 씹는 게 필요하다. 모니터로 보니 너무 실감나게 연기했다. 17회차 가운데 그 회차가 가장 유쾌했다.

Q. ‘두만강’(2009), ‘경주’(2013)가 장률 감독의 변곡점이 아닐까. 날카롭고 무거웠던 분위기가 유순하고 편해진 느낌이라는 평가가 많다.

A. 아무래도 환경, 삶, 나이가 바뀌니까 리듬이 자기도 모르게 달라졌을 거다. 한국에 정착한 지 5년이 됐는데 이 공간에서의 생각이 중국에서의 생각과 변할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은 채 계속 찍었다면 감독의 의도이자 고집일 거다. 영화 질감이 바뀐 거는 내 삶의 변화에서 오는 걸 거다. 예전에 날카롭고, 절망스럽고 냉정했던 게 지금은 부드럽게 되는 듯하다. 물론 날카로운 게 나쁜 건 아니다. 날카롭다면 사물의 어떤 면들을 봐야할 여유가 없어진다.

Q. 올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수상은 중국의 젊은 감독 2명(왕수에보, 장치우)에게 돌아갔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부산영화제에 대한 소감을 들려준다면.
A. 2005년 ‘망종’이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받으면서 이어진 인연이 꽤 깊다. 많은 도움을 얻었다. 부산영화제 없었다면 내 영화가 많이 알려졌을까 싶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앞으로 나아가면서, 계속 싸우면서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을 이뤄야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일들도 그렇듯이 포기하지만 않으면 해결 가능성이 더 많다. 이번에 뉴커런츠 선정작 수준이 최근 5~6년을 통틀어 제일 좋아 전체 심사위원들이 만족했다. 2명 모두 중국인이라 ‘중국 국적은 장률 밖에 없는데 편파판정 아니냐’는 농담도 하고 그랬다.

Q. 예전처럼 중국에서 영화작업을 해볼 생각은 없나?
A. 5년간 한국에 있었으니 중국에 돌아가 찍으면 또 다른 작품이 나올 거 같기도 하다. 연대에서 강의(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화학)를 하고 있어 촬영 시간이 촉박하다. ‘경주’는 방학기간에 찍었고, ‘춘몽’은 촬영과 강의를 병행했다. 그러다보니 작은 영화 밖에 못 찍게 되더라. 대학교수직이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나 족쇄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Q.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계속 학생들을 가르쳐오고 있는데 어떤 점이 좋은가.
A. 나이가 들면 생각이 옛날에 멈추게 되는데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젊은 학생들과 얘기하면 신기하고 신선하다. 그들의 생명력이 도움이 된다. 물론 그런다고 그들처럼 될 수는 없으나, 젊은 세대의 정서와 느낌은 그들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다. 영화는 남녀노소가 다 보는 예술이니까 다양한 연령층이 이해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또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 긴장하게 된다. 쓰레기 같은 작품을 찍으면 안 된다는.

뉴스엔 객원에디터


= 용원중 goolis@slist.kr /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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