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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vs 스모?’ 천하장사 이슬기 "씨름 그만 둘 뻔..." (인터뷰)
2013-02-06 18:00:02
 

[뉴스엔 표권향 기자]

하마터면 모래판 위에 선 이슬기의 포효 소리를 못 들을 뻔했다.

이슬기(26 현대상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006년, 프로 씨름팀이 줄줄이 해체됐다. 씨름이 점점 대중성을 잃어가자 모기업에서 소속 씨름팀을 포기한 것이다.
프로팀의 연이은 해체로 불안해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이슬기의 아버지가 앞장섰다. 이슬기의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이슬기에게 일본행을 권했다.

아버지의 권유는 씨름이 아닌 ‘스모’였다. 이슬기 역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 스모 인기로 유혹… 스모선수는 아이돌 스타

일본에 도착한 이슬기는 전통 스포츠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슬기는 “스모팬 대부분이 어린 여학생이었고 선수들은 아이돌 대접을 받았다”며 씨름과 달리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은 스모의 인기에 감탄했다.

이슬기는 “스모선수들이 지나가자 어린 여학생들이 환호했다. 우리나라 씨름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반해 스모로 전환할까도 생각했다”며 인기로 인해 유혹 당했었음을 밝혔다. 이슬기는 “팬들이 선수 입장부터 볼 수 있도록 통로는 물론 선수 발 밑까지 통유리였다. 그 밑에는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다”며 개방된 시설로 선수와 팬이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부러워했다.

이슬기는 스모도장을 찾아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 중 한 도장에서 이슬기를 맘에 들어 했고 이슬기는 입단 준비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일본 스모계에 문제가 있었다. 일본 전통 스포츠인 스모 경기에서 일본 선수보다 몽골 용병선수가 요코즈나(스모 챔피언)를 싹쓸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스모협회는 그 해 한 도장 당 한 명의 외국인 선수만 영입할 수 있다는 새 규정을 세웠다. 이슬기가 입단하기로 했던 도장에는 이미 외국인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슬기의 입단은 자연스레 백지화됐다.


▶‘동료’의 이름으로… 재기 성공

이슬기는 2007년 마지막 프로팀 ‘현대상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에 입단했다. 프로에 입단한 기대와 기쁨도 잠시, 2007년 대한씨름협회가 ‘프로팀은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을 세웠다.

다행히 2008 대한씨름협회가 일년 만에 프로팀의 대회참가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슬기는 대회에 불참했다. 목적상실로 무료한 일 년을 보낸 이슬기의 몸에 이상이 온 것이다. 이슬기는 늘어난 체중과 둔해진 감각으로 연습 중 왼 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이슬기는 “정말 최악이었다”고 한 마디로 잘랐다. 이슬기는 “자신감마저 상실했던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며 재활기간 씨름을 그만 두고 싶어했던 심정을 밝혔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 포기의 문턱 앞에 서있던 이슬기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가 나타났으니, 바로 이슬기의 소속팀 김은수 감독이다. 김은수 감독은 이슬기가 씨름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슬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은수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이슬기의 재활을 도왔다. 김은수 감독은 이슬기가 연습 도중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나쁜 습관을 수정하는 과제와 늘어난 체중관리 그리고 가장 심각했던 의기소침한 체력을 향상시키는데 힘썼다.

이슬기는 “감독님은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답답하다고 말했다”며 김은수 감독이 이슬기의 문제점을 바로 알아차렸다고 했다. 이어 이슬기는 “감독님 지도대로 다이어트를 하며 체력단련에 힘쓰니 조금씩 빛이 보였다”고 말했다.

이슬기의 재기를 도왔던 건 김은수 감독만이 아니었다. 이슬기가 속한 씨름단 동료들도 이슬기의 복귀를 돕는데 한 몫 했다.

동료들은 24시간 이슬기와 함께 지내며 씨름계의 하락세와 부상으로 위축돼있던 이슬기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선배들은 후배 이슬기를 위해 기꺼이 개그맨이 돼주기도 했다. 이슬기는 “후배를 괴롭히는 선배는 단 한 명도 없다. 선배가 후배를 아끼고 이끌어주니 후배도 자연스레 선배를 잘 따른다”고 말했다.

지금도 코끼리 씨름단은 시합 후 다 같이 카페에 가거나 가까운 바닷가 근처에서 친목모임을 가진다. 이슬기는 “선수들과 수다를 나누며 한바탕 웃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했다.

이슬기가 속한 ‘현대상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은 팀 내 분위기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감독, 코치, 선수들은 물론 회사 직원들과도 가족같이 지낸다.

이슬기는 “현대가 인기 있는 비결과 지금까지 유일한 프로팀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선수단의 분위기와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다”고 밝혔다. 이슬기는 "회사 지원이 다른 팀과 비교할 수 없이 좋다. 회사의 충분한 지원은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았다"고 덧붙였다.

이슬기는 1월 24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뉴스엔 사무실에서의 인터뷰 중 소속팀 선수단의 비밀 하나를 말했다. 이슬기는 “간혹 감독님이 늦으면 간식내기 탁구시합을 한다. 그러다 감독님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샅바를 움켜쥐고 기합을 넣는다. 탁구로 땀 흘린 모습에 감독님은 우리가 스스로 연습했다고 생각해 칭찬해 주고 우리 선수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모두 개구쟁이들이다”며 동료들을 그리워했다.

이슬기는 김은수 감독의 부임과 팀 동료들의 관심으로 재활에 성공하며, 2011년 드디어 천하장사로 등극했다.



표권향 bonna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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